반도체 회로의 미세화와 고집적화로 제조공정에서 발생하는 열을 정밀하게 제어하는 냉각기술의 중요성이 커지는 가운데, 국내 연구진이 지구온난화지수가 0인 질소를 냉매로 사용해 극저온과 대용량 냉각성능을 구현한 산업용 칠러를 개발했다. 기존 냉매의 환경 부담을 줄이고 핵심부품부터 시스템까지 국산화함으로써 친환경 반도체 제조 기반 강화와 국내 극저온 냉각장비 산업의 기술 경쟁력 향상이 기대된다.
한국기계연구원(원장 류석현, 이하 기계연)은 탄소중립기계연구소 에너지저장연구실 고준석 실장 연구팀이 영하 120℃ 이하에서 15kW의 냉각성능을 구현하는 터보-브레이튼 방식의 극저온 냉각시스템을 개발했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냉각시스템의 핵심부품 개발부터 설계·제작, 운전·제어에 이르는 전주기 기술을 자체 확보했으며, 이를 가로·세로 1.6m, 높이 2.1m 규모의 산업용 칠러로 제작해 성능시험까지 완료했다.
반도체 제조공정 중 식각은 웨이퍼 표면의 불필요한 물질을 제거해 미세한 회로 패턴을 형성하는 핵심 공정이다. 반도체 집적도가 높아지고 회로 선폭이 미세해질수록 식각 과정에서 발생하는 열을 정밀하게 제어해야 하며, 이를 위해 영하 100℃ 수준의 냉각유체를 공급하는 극저온 칠러가 사용된다.
그러나 기존 증기압축식 칠러는 지구온난화지수가 높은 냉매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 환경 규제 강화에 따른 대체 기술 확보가 요구되고 있다. 또한 냉각용량을 대형화하는 데에도 기술적 한계가 있어 반도체 제조공정의 고도화에 대응할 수 있는 친환경 대용량 극저온 냉각기술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연구팀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질소 기체를 압축한 뒤 팽창시키는 과정에서 냉각효과를 얻는 터보-브레이튼(Turbo-Brayton) 방식을 적용했다. 질소는 지구온난화지수(GWP)가 0인 물질로, 기존 냉매에 비해 환경 부담이 없고 안전성이 높은 것이 특징이다. 특히 시스템 운전 압력을 10기압 이하로 설계해 운전 안전성도 높였다.
핵심부품인 터보기계에는 자기베어링 기술을 적용했다. 자기베어링은 자기력을 이용해 회전축을 지지하는 방식으로, 윤활유 없이 터보기계를 고속 회전시킬 수 있다. 극저온 환경에서는 윤활유가 얼어 장비 고장이나 성능 저하를 유발할 수 있기 때문에 무급유 운전 기술이 필수적이다.
연구팀은 자기베어링을 적용한 터보기계를 자체 개발하고 분당 6만 회전(rpm)의 초고속 운전기술을 확보했다. 이를 통해 극저온 환경에서 윤활유 사용에 따른 문제를 해소하고 냉각 온도와 용량을 폭넓게 조절할 수 있도록 했다. 아울러 시스템 구조를 단순화하고 소형화 설계를 적용해 산업현장의 설치 공간 부담도 줄였다.
개발한 칠러의 성능시험에서는 운전 시작 후 30분 이내에 영하 120℃ 이하에 도달했으며, 60분 이내에 목표 냉각용량인 15kW의 부하 운전에 성공했다. 정격운전 조건에서 소비전력은 90kW, 소비전력 대비 냉각성능을 나타내는 성능계수(COP)는 0.167을 기록했다.
특히 터보-브레이튼 방식의 대용량 극저온 칠러를 산업용 장비로 제작하고 실제 운전성능까지 검증해 제품화 가능한 수준으로 개발한 것은 국내 최초다. 이는 연구팀이 2024년 영하 100℃에서 10kW 이상의 냉각성능을 입증한 데 이어, 핵심기술을 산업현장에 적용할 수 있는 대용량 칠러로 고도화했다는 점에서 기술적 진전을 보여준다.
이번에 개발한 기술은 반도체 칠러 제조기업인 ㈜차고엔지니어링에 이전됐으며, 2027년 제품 출시를 목표로 상용화가 추진되고 있다. 향후 반도체 식각장비를 비롯해 대용량 극저온 냉각이 필요한 다양한 산업 분야에 적용될 것으로 기대된다.
기계연 에너지저장연구실은 2018년부터 터보-브레이튼 방식의 극저온 냉각기술을 지속적으로 연구해 왔으며, 현재 영하 200℃까지 냉각할 수 있는 대용량 산업용 극저온 냉각기술을 확보했다. 앞으로 영하 250℃, 영하 269℃까지 냉각할 수 있는 기술을 단계적으로 개발해 초전도, 우주, 수소, 양자, 핵융합 등 미래 첨단산업으로 적용 범위를 확대할 계획이다.
고준석 기계연 에너지저장연구실 실장은 “2024년 산업용 칠러 개발을 목표로 제시한 이후 연구진의 노력으로 이를 제품화 가능한 수준까지 발전시킬 수 있었다”며 “이번 성과를 바탕으로 반도체 제조현장뿐 아니라 다양한 미래 유망 산업 분야에서 활용할 수 있는 산업용 극저온 냉각기술을 지속적으로 개발하겠다”고 전했다.
한편, 이번 연구는 기계연 기본사업인 ‘반도체 제조공정용 터보-브레이튼 초저온 냉각시스템 개발’ 과제의 지원을 받아 수행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