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L이 나트륨(소듐, Sodium, Na) 이온 배터리의 양산 계획을 발표한 가운데, 국내 배터리 업계에게 기술의 성능, 경제성, 공급망 변동 대응능력 등을 포괄하는 미래전략 개선이 요구되고 있다.
한국자동차연구원(KATECH)은 15일 ‘나트륨, EV 확산의 새 동력이 될 것인가’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 CATL은 삼원계와 리튬인산철을 넘어 EV용 나트륨 이온 배터리 양산 계획을 공식화했다. CATL은 ’25년 4월 상하이에서 열린 자체 테크데이 행사에서 차세대 나트륨 이온 배터리 ‘낙스트라(Naxtra)’를 공개하며 전기차용 배터리 포트폴리오에 새로운 제품군을 추가했다.
나트륨 이온 배터리는 원소재가 풍부하고 열·화학적 안정성이 높으며, 리튬 이온 배터리와 유사한 구조로 기존 생산라인 및 기술과의 연계가 유리해 배터리 제조사들의 주목을 받아왔다. 다만, 나트륨의 큰 이온반경으로 인한 낮은 에너지 밀도, 배터리 수명 확보 어려움 등으로 그간 상용화가 지연됐다.
CATL은 ’21년 7월에 1세대 나트륨 이온 배터리 공개 후, 상용화 개발을 지속해 지난 4월 상하이 ‘CATL Tech Day’ 행사에서 개선된 나트륨 이온 배터리를 시연함과 동시에 ’25년 12월 양산 계획을 발표했다.
나트륨 이온 배터리는 광물 매장량 등 공급망 편중 이슈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것이 장점이다. 리튬 이온 배터리의 주요 성분인 리튬은 지각 내 매장량이 제한적이어서 수요 증가에 따라 가격이 급등할 위험이 크고, 원소재 가공은 중국 의존도가 매우 높다.
리튬은 중국, 호주,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 세계 각지에서 채굴이 가능하나, 전기차 배터리 등급의 고순도 제련·정제는 전 세계 물량의 약 65%가 중국에서 이뤄지고 있다. 여기에 中 정부는 지난 7월 배터리 양극재 및 원자재 가공 기술, 비철금속 가공 기술 등을 수출 통제 대상에 포함하며 기 확보한 전기차 배터리 공급망 지배력을 공고히 하려는 상황이다.
반면 나트륨은 리튬 대비 매장량이 풍부하고, 전 과정(lifecycle) 환경 영향에서도 장점이 있다. 나트륨의 지각 내 매장량은 리튬 대비 약 1,200배에 달하며 기술개발로 경제성을 확보하기만 하면 해수로부터의 수급도 가능해, 원소재에 대한 특정 국가 의존성을 낮출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또한 나트륨 이온 배터리는 리튬이온 배터리 대비 전 과정 탄소배출량 등 환경 영향을 개선할 수 있고, 철(Fe) 기반 대체 소재를 활용해 코발트(Co), 니켈(Ni) 등 독성이 높은 귀금속 사용을 줄일 수 있다.
보고서는 LFP(리튬인산철) 배터리의 EV 점유율 확대 사례가 나트륨 이온 배터리에서 재현될 가능성도 존재한다고 분석했다.
삼원계 대비 가격이 저렴한 LFP 배터리는 수요가 지속 증가하며 ’24년 EV 시장의 과반을 차지했다. LFP 배터리는 전기차 생산 단가의 30~50%를 차지하는 구동 배터리의 비용을 낮춰, 저가 전기차라는 신규 세그먼트를 탄생시키고 중국 내수시장을 중심으로 한 전기차 확산의 핵심 동력으로 부상했다.
LFP 배터리의 시장점유율이 급증함에 따라, LFP 배터리 기술을 선도해 온 CATL과 BYD가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시장의 50% 이상을 점유하는 등 중국 배터리 업체들의 약진이 두드러지고 있다. LFP 배터리의 채택에 적극적이었던 중국 전기차 업체들은 저가 전기차의 성장세에 힘입어 글로벌 전기차 시장의 강자로 부상하며 Tesla가 주도하던 시장에서 새로운 경쟁 구도를 형성하는 중이다.
나트륨 이온 배터리의 잠재력은 대상 시장의 환경과 차량 용도에 따른 선택지를 확대함으로써 완성차 기업에 전동화를 위한 전략적 도구를 제공한다는 점에 있다. 지속적 기술개발로 나트륨 이온 배터리의 가격 경쟁력 및 에너지 밀도를 보다 개선한다면, 저비용 전기 모빌리티 확산 및 극한 지역 틈새시장 개척의 선도적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나트륨 이온 배터리가 성공적으로 양산될 경우, 완성차 기업은 광물 가격 변동성에 대응하기 위해 리튬계 배터리 의존을 줄이고 배터리 포트폴리오에 나트륨 이온 배터리를 포함할 가능성이 높다. 단, 낮은 에너지 밀도에 따른 주행가능거리 한계, 규모의 경제 미확보, 리튬 가격 하락에 따른 가격 경쟁력 악화는 나트륨 이온 배터리의 전기차 적용을 위한 도전 과제다.
CATL은 나트륨 이온 배터리를 전기차 구동용으로 적용할 계획을 발표했으나, 업계 전반에서는 여전히 이를 공간 제약이 적은 ESS나 하이브리드차 배터리에 적합한 기술로 인식하는 시각이 여전하다. 이러한 업계의 시각은 그간 LFP 배터리가 상용화되면서 전기차 가격 저감을 충분히 달성했고, 여타 기술적 이슈는 삼원계·인산철 기술의 개선으로도 해결 가능하다는 인식을 반영하고 있다.
보고서는 중국계 배터리의 공세 대응을 위해 국내 배터리 업계의 미래 전략 개선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중국 배터리 기업들은 서방의 견제에도 불구하고 자국 시장 성장세를 바탕으로 전기차 배터리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한 기반 구축에 역량을 집중하는 중이다. 최근 중국 배터리 업계는 수요 증가세에도 불구하고, 한국계 기업을 제외하면 전기차 배터리의 공급 기반이 부족한 유럽 현지에 공장 건설을 추진하는 등 적극적 해외 투자를 진행 중이다.
국내 배터리 산업의 글로벌 경쟁력 우위를 유지하기 위해, 그간의 삼원계 중심 전략이 보여준 한계를 고려해 장기적 시장 변화에 선제 대응할 전략을 마련해야한다. 국내 배터리 기업의 삼원계 배터리 제조·생산 중심 고도화 전략은 경제성에 방점을 둔 LFP 배터리 시장의 성장세에 적기에 대응하지 못하고 시장 주도권 일부를 중국에 내어주는 결과로 귀결된다.
보고서는 “배터리 중장기 기술개발 전략 수립에 있어 기술의 성능 지표 우위뿐 아니라 시장 경쟁력과 관련된 경제성, 공급망 변동 대응 능력 등을 포괄하는 보다 종합적이고 균형 있는 관점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