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연구진이 폭발 위험 없이 대용량 전기를 안정적으로 저장 가능한 ‘철-크롬계 흐름 전지’의 수명 향상 기술을 개발, 이에 따라 출력 변동이 큰 풍력·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저장하고, 필요할 때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다.
UNIST는 철-크롬 흐름 전지의 성능 저하 원인을 밝혀내고, 전해질 조성을 조절해 반복되는 충·방전에도 용량을 유지하는 전지를 개발했다고 29일 밝혔다.
이번 연구는 UNIST 에너지화학공학과 이현욱 교수 연구팀이 KAIST 서동화 교수, 미국 텍사스대학교 귀이화 위(Guihua Yu) 교수와 공동으로 진행됐다.
흐름 전지는 일반적인 배터리와 달리 전극 물질이 물에 녹아 있는 전해액 형태로 존재한다. 전해액 자체가 전극처럼 작동하는 ‘액체 전극’인 셈이다. 전기를 저장하거나 꺼내 쓸 때는 이 전해액을 펌프로 흘려보내기만 하면 된다.
휘발성 전해질이 아닌 물을 사용해 폭발 위험이 없고, 탱크 속 전해액 양만 조절하면 전기 저장 용량을 자유롭게 바꿀 수 있어 풍력이나 태양광처럼 전력 생산이 일정하지 않은 신재생에너지를 저장하는 데 적합하다.
흐름전지 중에는 바나듐 흐름전지가 가장 상용화에 근접했지만, 바나듐은 비싸고 매장량이 특정 지역에 집중된 지하자원이라는 한계가 있다. 이에 비해 철-크롬계 흐름 전지는 가격 경쟁력이 뛰어나다. 그러나 크롬의 반응성이 약해 충전이 느리고 출력도 약하다는 단점이 있었다.
공동 연구팀은 고출력 철-크롬계 흐름 전지의 성능 저하 원인을 규명하고 이를 개선할 수 있는 전해액을 설계했다. 헥사시아노크로메이트([Cr(CN)₆]⁴⁻/³⁻)라는 물질을 활용하면 출력과 충전 속도는 높일 수 있지만, 충·방전을 거듭하면서 용량이 급격히 감소하는 문제가 있었다.
연구진은 그 원인이 크롬 이온을 둘러싼 사이아나이드(CN⁻) 이온이 수산화(OH⁻) 이온으로 교체되는 현상 때문임을 밝혀냈다. 충전 과정에서 과량 발생한 수산화 이온이 사이아나이드 이온 자리를 차지하며 전해액 구조를 붕괴시키는 것이다.
이에 연구팀은 전해액 내 사이아나이드와 수산화 이온 농도 비율을 조절해 해당 반응을 억제하고, 전해액의 화학 구조를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배합 비율을 도출했다. 이 비율을 적용한 철-크롬 흐름 전지는 250회 이상 충·방전을 반복해도 초기 용량과 효율을 안정적으로 유지했다.
이현욱 교수는 “값싼 철·크롬계 전해액으로도 오래 쓸 수 있는 고출력 흐름 전지를 만들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연구”라며 “신재생에너지 발전량이 많고, 흐름전지를 설치할 만큼 국토 면적이 넓은 중국, 유럽 국가들이 큰 관심을 보이고 있는 기술”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