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자국우선주의 정책으로 인해 기존 통상정책의 전략적 전환이 불가피한 가운데, 산업별 맞춤형 대응전략 및 한미 간 공급망 협력 구조 제도화 등 한국형 통상전략의 정립이 시급하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산업연구원(KIET)은 19일 ‘글로벌 통상질서 전환과 대한민국 통상의 새로운 길’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는 보호무역주의 강화, 미중 전략경쟁, 글로벌 공급망 재편 등으로 인해 통상환경이 구조적으로 변화하고 있으며, 특히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상호관세 및 제조업 리쇼어링 정책, 중국의 전략 품목 중심 공급망 장악이 한국 경제에 심각한 도전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또한 한국의 수출이 특정 국가와 품목에 편중돼 있고, 디지털·환경·ESG 등 신통상 이슈에 대한 대응도 아직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다만 보고서는 반도체, AI 등 첨단기술 분야에서 한국이 주요국의 보완재적 파트너로서 전략적 기회를 확보할 수 있는 여지가 크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전략산업 중심의 가치사슬 재편 △수출시장과 품목의 구조적 다변화 △산업·통상 연계형 공급망 경쟁력 강화 △다자·소다자 통상협력 심화 △디지털 및 환경 인프라 확충을 통한 규범 대응 역량 제고 등 산업·통상 정책 전반의 전략적 개선을 제안했다.
’25년 현재 글로벌 통상질서는 세 가지 결정적 흐름인 △중국의 부상 △첨단기술을 둘러싼 패권 경쟁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강화에 의해 구조적 재편기에 진입하고 있다. 미국은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상호관세, 제조업 리쇼어링, 산업보조금 정책을 전면화하며 자유무역 질서의 작동 기반을 크게 약화시키고 있다.
특히 미국은 동맹국에도 예외 없이 자국 우선주의와 상호주의 원칙을 적용하면서, 한국을 비롯한 주요 무역 파트너들에게 새로운 대응 전략 수립을 강요하고 있다. WTO 중심의 다자체제가 약화되고 미국 주도의 양자 통상 네트워크가 강화되는 상황에서, 한국은 기존의 협력 구조만으로는 대응에 한계가 있으며, 통상정책 전반의 전략적 전환이 불가피한 상황에 놓여 있다는 분석이다.
한국의 통상구조는 자유무역과 글로벌 가치사슬에 최적화된 ‘Old Normal’ 전략을 기반으로 성장해왔지만, 현재의 급변하는 통상환경에서는 구조적 전환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높은 수출의존도와 특정 국가·품목에 대한 집중은 외부 충격에 취약한 구조적 리스크로 작용하고 있으며, 한국 기업의 해외 생산기지 또한 중국의 가공무역 구조에 편중돼 있어 미중 전략경쟁과 중국의 첨단산업 내재화 정책이 국내 제조업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구조적 연계를 갖고 있다. 동시에 디지털, 환경, 보조금 등 새로운 통상 규범 질서가 빠르게 부상하고 있으나, 이에 대한 국내 법제화와 제도 내재화는 아직 충분히 이뤄지지 않은 실정이다.
반면, 글로벌 공급망이 반도체·AI 등 전략산업 중심으로 재편되는 흐름 속에서 한국은 기술력과 신뢰도를 바탕으로 미국, EU 등 주요국의 보완재적 파트너로 부상할 수 있는 기회를 갖고 있다. 아울러 공급망 다변화, 디지털 통상 선도, 글로벌 사우스와의 협력 확대 등을 통해 현재의 위기를 전략적 기회로 전환할 수 있는 가능성도 충분히 존재하며,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통상 전략의 패러다임 전환이 무엇보다 시급하다는 설명이다.
보고서는 전환기의 글로벌 통상질서 속에서 한국은 단기적인 통상 리스크 대응과 함께 중장기적인 산업·통상 전략의 대전환이 요구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먼저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상호관세 및 보편관세 강화, 대중 디커플링 정책은 한국의 주력 수출 품목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자동차·철강·배터리 등 분야에서 맞춤형 산업별 대응전략과 한미 간 공급망 협력 구조의 제도화가 시급하다.
동시에 미·중·EU 등 주요국의 자국 산업 중심주의에 대응해 전략산업 연계형 가치사슬 재편과 양자 맞춤형 협력전략 수립이 필요하며, 수출시장·품목·방식의 구조적 다변화를 통해 통상 리스크를 분산하고 글로벌 사우스와의 산업 협력 확대를 추진해야 한다.
또한 공급망 리스크에 대응하기 위해 민관 정보공유 기반의 조기경보체계를 고도화하고, 수요기반형 기술개발과 수출형 소부장 전략을 통해 산업경쟁력과 공급 안정성을 동시에 확보해야 한다. 아울러 다자통상질서 회복을 위한 규범 형성 논의에 적극 참여하고, 미국 IRA나 EU CBAM 등 주요국의 차별적 통상조치에 대한 국내 대응전략도 정교하게 구축해야 한다.
아울러 디지털 무역과 환경 규범 대응을 위한 국내 법·제도 정비 및 인프라 확충을 통해 중소기업을 포함한 기업 전반의 대응 역량을 강화하고, 데이터 이동·탄소 정보 등 무형 인프라를 확보해야 한다.
나아가 ‘크고 아름다운 하나의 법안(OBBB)’ 등 미국 중심 공급망 재편에 대응해 한국을 첨단 제조의 아시아 허브로 포지셔닝하기 위한 투자유치 전략과 입지 경쟁력 제고 방안도 함께 마련해야 한다.
보고서는 이러한 통합적 전략을 통해 한국은 첨단 제조 생태계 재편기 글로벌 통상 구조 속에서 핵심적인 전략거점으로 도약할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