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료전지, 근본적·과감한 투자 전략 必
■ 산업 및 시장 동향
연료전지는 이미 1839년에 영국의 윌리엄 그로브(William R. Grove)가 제안한 전지의 형태로 그 역사가 깊다. 1960년대 미국의 Gemini 우주선에 최초로 적용됨으로써 사용 가능성을 입증하기 시작하였으며, 1970년대의 오일쇼크 이후 미국을 중심으로 개발이 본격화되었다. 1980년대에는 유가의 안정화로 잠시 개발이 주춤하였으나, 1990년대 이후 수소연료전지 자동차의 개발을 계기로 다시 활성화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는 수소연료전지 자동차, 건물용 연료전지, 연료전지 발전소, 휴대용 연료전지 등 다양한 분야에서 다양한 형태로의 적용이 시도되고 있으며, 이를 둘러싼 주변 기술의 개발도 빠른 속도로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화석 연료 자동차를 대체할 차세대 자동차로서 수소연료전지 자동차에 대한 수요는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어서, 미국, 일본, 독일 등 자동차 선진국에서 이미 상용화 단계에 돌입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주요한 완성차 제조사들 대부분이 2010년대 중반 이후 수소연료전지 자동차의 상용화를 계획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새로운 자동차 시대를 열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특히, 연료전지의 초기 시장은 선진국 중심의 연료전지 연구개발 사업에 의해 형성되는 특징이 있으며, 고분자 전해질막 연료전지의 경우 2018년에는 11.6조원의 시장을 형성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 국내 동향
1) 시장규모 및 전망
저온형 고분자 연료전지는 종류별로 나뉘어 연구 개발 및 상용화를 위한 투자가 진행되고 있기는 하지만, 현재까지 가장 상용화를 목전에 둔 연료전지 적용 시장은 수송용 즉, 자동차용 연료전지가 당분간 대부분을 차지할 수밖에 없는 것이 사실이다. 아울러 연료전지는 아직까지 시스템을 기반으로 하는 관점에서 시장 조사가 이루어지고 있으므로 연료전지의 각 부품에 해당하는 소재 시장에 대한 별도의 관점을 정확히 예측하기란 어렵다. 특히 탄화수소계 전해질 고분자막 개발 및 상용화에 집중하고 있는 국내 현실 여건에 비추어 볼 때, 아직까지 불소계 전해질 고분자막이 전 세계 고분자 연료전지 시장의 전부를 담당하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사실상 전해질 고분자에 대한 국내 시장 규모는 전무하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점을 참고하여 연료전지용 전해질 고분자 시장 동향과 전망은 자동차용 연료전지 시스템 관점의 전체적 시장 규모를 파악하고 동향을 예측하여 소재 시장 변화를 전망하는 것도 무방할 것이다. 아래의 그림은 현대자동차가 발표한 연료전지 자동차 세계 시장 및 국내 시장 전망 및 보급 계획이다.
2) 기업 현황
국내의 연료전지 관련 사업을 상용화한 기업은 아직까지 전무하지만 이것은 세계 시장 또한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지금 당장 현실적 상황으로 연료전지를 개발하는 기업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연료전지 시장 상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아직 상용화로 런칭을 하지 않았을 뿐이지 실제로는 상용화를 목전에 두고 있거나 이미 상용 기술을 확보한 국내 기업이 없지 않다. 또한, 그중에서도 전해질 고분자막을 상용화하려는 기업들의 현황을 살펴보면 불소계 전해질 고분자를 이용하여 연료전지용 고분자막을 생산하려는 기업과 탄화수소계 전해질 고분자를 이용하여 연료전지용 고분자막을 생산 판매하려는 기업으로 명확히 나뉘어 있다.
우선 불소계 전해질 고분자막을 개발하여 상용화를 목표로 하는 국내 대표 기업으로는 상아프론테크와 코멤텍이 있다. 그러나 앞서 기술개발 동향에서 기술한 것처럼 국내에서는 아직까지 불소계 전해질 고분자를 합성, 제조할 수 있는 원천 기술 자체를 보유하고 있지 않으므로 두 기업 모두 해외로부터 원료를 수입하여 고어텍스에서 생산하는 막과 같이 강화복합형 막으로 개량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이 경우 원료의 수입선에 따라 막의 생산 단가가 크게 좌우되기 때문에 최근에는 듀폰사의 나피온을 카피한 원료를 중국으로부터 대량 구매하여 생산 단가를 낮추고 기존 해외 선도 기업 제품과 경쟁하려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원천 소재 기술력을 확보하지 못하는 근본적인 문제점을 안고 있고 원료 공급 국가인 중국의 시장 상황 변화에 따라 연료전지 사업 전체가 영향을 받게 된다. 이와 같은 단기간의 미봉책으로는 선점적 시장 장악은 현실적으로 어려울 수밖에 없다.
불소계 전해질 고분자 제조에 대한 원천 기술 부재로 인한 차선책으로 탄화수소계 전해질 고분자를 제조하고 막으로 생산 판매하려는 국내의 대표 기업으로는 코오롱인더스트리와 동진세미켐이 있다. 물론 현재도 상용화 연료전지에 탄화수소계 전해질 고분자를 채택하고 있는 시스템 제조 기업은 없다. 가장 큰 고객이라 할 수 있는 현대자동차의 경우도 현재 연료전지차에 불소계 전해질 고분자막을 채택하고 있지만, 여전히 탄화수소계 전해질 고분자막의 가능성(친환경성, 가격 절감, 원천 기술 확보, 빠른 유지 보수 대응 등)을 가볍게 생각할 수 없기 때문에 목전의 상황만이 아닌 좀 더 미래지향적 관점에서 개발 투자를 진행 중이다.
■ 해외 동향
1) 시장규모 및 전망
저온형 전해질 고분자 소재에 대한 세계 시장 규모를 파악하기란 현실적으로 몇 가지 어려운 점이 있다. 우선 일본의 도요타(Toyota)의 미라이(Mirai)를 선두로 미국의 제너럴 모터스(General Motors), 그리고 한국의 현대자동차가 2015년을 기점으로 상용 연료전지 자동차를 출시하였다(현대차의 수소 연료전지차가 2015년 출시됨). 그러나 기존 화석연료 기반 자동차처럼 일반 대중에게 판매할 수 있는 인프라가 구축되지 않은 실정이다. 각국 정부의 지원금 없이는 일반 대중이 기존 화석연료 자동차와 비교하여 가격이 월등히 높은 연료전지차의 구매를 망설일 수밖에 없다. 또 한 가지 부정적인 측면은 리튬이온전지를 탑재한 전기차의 시장 진입 기세가 거세다는 데 있다. 지난 몇 년 사이 급부상한 미국의 테슬라(Tesla Motors)가 출시한 전기자동차는 그동안 엔진 대신 리튬이온전지를 탑재하여 친환경 차원의 공격적 마케팅을 펼쳤다. 하지만 이제는 항속 거리마저 기존 차량에 버금가게 기술을 발전시킴으로써 연료전지차의 시장 진출을 더욱 늦추게 하는 요인이 되었다. 이러한 주변 환경적 요건 변화에 따라 연료전지 시장 전망도 바뀌었다. 5년 전만 하더라도 연료전지가 자동차 엔진을 대체할 가장 강력한 후보로 주목받으며 공격적 시장 성장론이 우세했으나, 최근에는 상당히 냉정한 관점의 시장 전망으로 분위기가 변화하였다. 다음의 그림에서 보는 바와 같이 에너지 조사기관인 네비건트 리서치(Navigant Research)의 가장 최근 예측 자료에 의하면 2024년 세계 연료전지 시장 규모가 약 15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같은 기관의 2012년 예측 자료보다 성장률이 절반 이하로 내려간 수치이다.
불소계 전해질 고분자 합성·제조기술 보유해야
탄화수소계 전해질 고분자막 가능성에 투자요구
2) 기업 현황
이미 불소계 전해질 고분자는 상업화가 이루어진지 오래이며 실제로 상용화를 위한 고분자 연료전지에 대부분 사용되는 전해질 고분자막은 불소계 전해질을 바탕으로 한 제품들이다. 상업화된 불소계 전해질 고분자를 생산하는 대표적 기업들로는 나피온(Nafion)이라는 브랜드로 전 세계 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미국의 듀폰(DuPont)과, 이를 추격하려는 다국적 기업 솔베이(Solvay), 퓨마테크(Fuma-Tech) 및 일본의 아사히 케미칼(Asahi Chemical), 아사히 글라스(Asahi Glass)가 있다. 각 기업마다 미래 연료전지 시스템에 적용될 전해질 고분자로서 자사의 제품이 채택될 수 있도록 꾸준한 기술 개발을 통해 시장 점유율을 높이려 애쓰고 있다. 그러나 현재까지는 나피온으로 대표되는 듀폰사의 불소계 전해질 고분자가 세계 시장 대부분의 수요를 차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정확히 연간 생산량이나 판매량이 공식적으로 공개된 적이 없는데 이는 연료전지용 전해질 고분자가 듀폰사의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미미한 수준이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저온형 연료전지의 시장 확대를 예측하는 경제 전문가들이 많고 실제로 세계 각국의 기후변화 대응 전략으로 신재생에너지 중 연료전지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만큼 반드시 부정적인 측면으로 관측할 필요는 없다. 따라서 향후 몇 년간의 추이를 기반으로 선두 기업의 윤곽이 명확히 드러날 것으로 여겨진다.
■ 미래의 연구방향
1) 불소계 전해질 고분자 소재
고분자 연료전지에 사용되는 전해질 고분자는 연료전지를 가동할 때 연료로 사용되는 수소(또는 산소)의 전해질 고분자막을 통과하여 반대쪽 전극에서 발생하는 물 이외의 부산물(라디칼, 과산화수소 등)에 의해 급속한 열화가 진행된다. 따라서 이를 억제하기 위해 불소계 고분자의 주쇄(主鎖) 또는 가지의 구조를 변화시키는 연구가 오랫동안 진행되었으나, 불소계 전해질 고분자의 화학적 구조상 근본적인 해결 방안은 되지 못한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신 막의 열화를 유발하는 라디칼 등의 생성을 억제하는 스캐빈저(scavenger) 또는 퀜쳐(quencher)를 막의 한쪽 면에 도입하는 방법 등을 통해 동일한 연료전지 운전 조건에서 막 수명을 혁신적으로 향상시킨 사례가 점차 증가하고 있다. 그러므로 향후 불소계 전해질 고분자의 화학 구조적 성분 변화에 더하여 시스템 구조적 변화를 통한 성능 및 내구성 개선 방향이 연구 개발의 주를 이루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2) 탄화수소계 전해질 고분자 소재
최근 몇 년간의 국내외 연구를 통해 탄화수소계 전해질 고분자막은 그 자체로의 내화학성은 불소계 전해질 고분자막을 능가할 수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실제 연료전지에 적용할 경우 연료전지 반응 원리의 특성상 연료 가스의 막을 통한 투과도가 불소계 전해질 고분자에 비해 현저히 낮기 때문에 막의 열화의 원인이 되는 라디칼과 같은 부산물 생성이 적어서 엔지니어링 플라스틱 계열의 방향족 전해질 고분자를 적용하면 화학적 내구성의 문제는 거의 해결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화학적 안정성과 동시에 가습과 건조가 반복되는 연료전지 특성상 기계적 안정성도 확보가 되어야 하는데 방향족 탄화수소계 고분자는 화학적 물성이 대부분 딱딱한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따라서 팽윤과 응축을 반복하는 환경에서는 쉽게 부러지는 등의 단락 현상이 발생하고, 이는 곧 기계적 강도의 저하로 직결된다. 그래서 최근에는 탄화수소계 전해질 고분자막에 대한 거의 모든 연구 개발 방향이 강화복합막으로 집중되고 있다. 팽윤과 응축에 강한 비전해질 다공성 고분자 필름에 전해질 고분자를 함침 또는 충진하는 강화복합막이 화학적, 기계적 내구성 향상의 중심이 될 것이다.
■ 정책 제언
1) 정부의 적극적 지원
고분자 연료전지 시장을 가장 현실적인 시각에서 냉정하게 바라보면 당장 상용화를 통해 시장 진입을 앞둔 연료전지 자동차에 세계인의 이목이 쏠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연료전지 자동차에 적용 가능한 전해질 고분자의 경우 국내에서 원천기술을 보유하고 있지 않은 불소계 전해질 고분자이다. 특히, 이미 완성도 높은 기술력으로 세계 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고어텍스사의 시장 독점 상황을 타개하려면 일개 기업의 역량만으로는 극복할 수 없다는 것을 정부 차원에서 냉정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다소 늦었지만 2015년 말부터 국내에서도 국가 연구개발 사업을 통한 불소계 전해질 고분자막 개발을 수행하고 있으므로 사업의 성공 여부에 따라 국내의 기술력에 대한 미래의 향방을 가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국가적 연구 개발 투자는 선진국과 비교하여 매우 미비한 수준에 머물고 있음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따라서 보다 근본적이고 과감한 투자 전략만이 단기간에 핵심 기술을 보유한 선진국 또는 선진 기업의 기술력을 따라잡을 수 있을 것으로 사료된다.
2) 국책 연구기관의 선택과 집중
원론적인 이야기이지만 국책 연구기관이 담당해야 할 역할은 새롭고 가장 첨단인 기술들을 학문적 관점에서 연구하는 학계와 이들 중 가장 실용성과 상용성이 있는 기술 중 현실성 있는 양산화 기술을 통해 이윤을 추구하는 산업계 사이에서의 교량으로서 작용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양한 연구 주제를 나열하는 방식이 아닌 산업계 및 학계의 현실적 목소리를 냉철히 판단하여 과감한 주제 선택과 집중을 통해 교량의 역할에 충실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유행처럼 세계적 연구 개발의 흐름만을 쫓아서 유사 연구를 진행하는 국책 연구기관들이 동일한 주제를 경쟁적으로 기획 발굴하는 것처럼 불편한 상황이 초래되는 경우가 허다함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국책 연구기관 간 융합 연구를 통해 선택과 집중을 하려는 움직임이 있지만, 동일한 연구를 다른 국책 연구기관에서 진행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므로, 이러한 동종 연구를 수행할 수 있는 전문가 그룹 간의 동일한 주제에 대한 선택과 집중 측면에서의 융합 연구 사업도 절실히 요구된다고 볼 수 있다. 이 또한 정부 해당 부처의 용단이 필요하다고 사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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