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미콘타이완’, ‘靜中動’ 대만 전자산업 대변
본지 기자는 취재 시에 노트북을 휴대할 상황이 수시로 발생한다. 이에 가볍고도 성능이 좋은 제품을 선호하게 되는데, 기자가 노트북을 구매하기 위해 여러 제품을 살펴볼 때 단번에 눈에 들어오는 제품이 있었다. 무게가 1㎏을 넘지 않았으며, 본체 케이스도 탄소섬유로 제작돼 플라스틱 제품에 비해 가볍고도 고급스러워 보였다. 성능도 인텔의 i7 CPU를 장착해 동급에서 성능이 우수했다. 모든 것이 만족스러웠는데 브랜드가 마음에 걸렸다. 한국의 S사나 L사, 미국의 A사가 아닌 대만의 G사였다. G사의 노트북을 구매하고 한동안 세계 최저 무게의 노트북이라며 자랑하기도 했지만, 고장시 수리의 어려움을 겪고 다시는 대만 제품을 구입하지 말자라고 다짐하기도 했었다. 일단 고장시 한국에서 수리가 불가능해 대만으로 제품을 보내고 수리해서 돌아오는데 장장 두 달의 시간이 걸렸던 것이다. 물론 그 기간 같은 제품으로 무상대여해주기는 했지만 내 것이 아닌 남의 것을 쓰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는 없었다. 이런 A/S 정책에 대한 문제만 제외하면, 기본적인 제품의 품질이나 성능은 문제될 것이 없었다. 가격을 고려하면 동급사양의 국산 제품에 비해 저렴한 편이었다.
기자의 노트북에 대해서 먼저 이야기한 이유는 세미콘 타이완 참관 관계로 3박4일의 일정으로 대만을 방문할 기회가 있어서였다.
전자 제품의 강자를 이야기할 때 한때는 일본을 이야기 했지만, 이제는 과거의 이야기가 됐다. 물론 지금 우리나라가 반도체, 스마트폰, 디스플레이 등에서 세계 최강을 달리고 있지만 우리나라가 아직 세계 최강의 자리를 차지하지 못한 전자 분야는 사실 엄청나게 많다.
그 중에서 전자제품의 메인보드, 패키징, 반도체 파운더리 등은 대만이 세계 최고의 자리를 수십 년간 차지하고 있다.
컴퓨터 메인보드의 대표적인 브랜드인 ASUS나, GIGABYTE의 경우 대만 기업이며, 아이폰의 OEM 업체인 폭스콘도 대만 기업이다. 또한 세계 최고의 반도체 파운더리 기업인 TSMC도 대만 기업이다.
이렇게 대만이 전자제품 및 장비시장에서 세계 최고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가운데 지난 9월13일부터 15일까지 대만 타이베이에서는 ‘세미콘 타이완 2017’ 전시회가 열렸다.
‘세미콘 타이완’에 대한 평이 미국이나 한국보다도 규모가 작고, 이제는 중국보다도 전시회 규모가 작아졌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지만, ‘세미콘타이완’을 살펴봐야 할 이유는 분명하다.
반도체 장비, 소재 시장에서는 분명히 세계 최고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수치로 들어난다.
세미 타이완에 따르면 대만의 반도체 장비 및 재료 시장은 2016년 말 13%의 성장률을 유지해 360억달러에 달하고 2017년에는 현재까지 410억달러로 증가했다.
또한 세계 IC 파운더리의 선도적인 지분을 보유하고 있으며 설치 용량의 2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2017년 대형 반도체 장비 투자로 대만 반도체 산업은 호황을 누리고 있으며 2017년에 123 억달러를 소비 할 것으로 예상돼 2번째로 큰 팹 장비 지출 지역으로 손꼽히고 있다.
기자가 최초 이번 전시회에서 관심을 가졌던 분야는 반도체용 특수가스와 전구체 분야였다.
몇 년 전부터 관심 있게 취재해 왔으며, 특히 한국에서는 반도체 미세화와 더불어 수요증가 및 관련제품 증설 또는 일부 제품의 숏티지 등 관련 이슈들을 추적해왔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반도체 소재가 세미콘에서 무척 중요하게 다뤄져 왔다. 그 이유는 반도체 초 미세화로 갈수록 반도체 기업과 소재 기업간의 협업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차세대 제품의 개발과정에서는 소재 기업의 첨단 소재 기술이 핵심이 되고 있다. 이에 개발과정에 참여하지 못하는 기업은 향후 관련 제품에 소재를 납품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아 개발 단계에서부터 협업을 위한 치열한 경쟁이 펼쳐진다.
한국의 대표 기업으로는 원익머트리얼즈가 이번 전시회에 참가했다. 올해 지난해 부진을 털고 매분기 실적 경신을 하고 있는 원익머트리얼즈는 이번 전시회에 HCDS 등 반도체용 소재와 함께 특수가스 공급능력을 선 보였다.
특히 올해 품귀현상을 보이고 있는 N2O 등에서 최고 수준의 품질과 공급능력을 보유하고 있어 해외시장에서도 주목하고 있는 기업이다.
이번 전시회에는 한국에서도 익히 알고 있던 직원들이 비즈니스를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한국, 중국을 넘어 대만에서도 원익머트리얼즈의 공급능력 확대를 기대해 본다.
버슘머트리얼즈는 자사의 다양한 특수가스 공정을 소개했다. 특히 이번 전시회에는 지난번 한국에서 만난 에드워드 쇼버 총괄 부사장도 부스에 나와 적극적으로 회사 소개에 임해 반가움이 더했다.
버슘머트리얼즈는 지난 8월 한국 안산 반월 공장 내에 ADM(첨단 증착 소재) 기술 연구소를 준공한 바 있는데, 반도체 산업이 미세화 및 3D로의 구조변경이 가속화 되면서 이에 필요한 특수가스 및 첨단 신소재가 늘어나는데 이에 대한 수요에 적극 대응하고 있는 점이 인상 깊었다.
이외에도 일본, 중국이외에 대만으로 사업영역을 확장하고 있는 타이요닛폰산소, 리밍화공 등이 적극적으로 세일즈를 펼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파운더리·장비·소재 시장 강자, 자신감 엿보여
현지 업체 징허 방문, 참관단 세미콘 이해도 향상
그러나 이번 전시회에서 가장 주목 받은 분야는 특수가스가 아니라 패터닝 및 패키징, 검사 등 장비 업체들이었다.
그 이유는 대만이 반도체 파운더리 최고의 시장이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최대의 시장답게 관련 제품의 판매가 가장 많은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 업체에서는 원익IPS에서 참가해 제품의 우수성을 대만에 알렸다. 원익IPS의 제미니 PECVD(Plasma-Enhanced Chemical Vapor Deposition) 시스템은 장치가 축소됨에 따라 웨이퍼 균일도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균일성이 중요하기 때문에 장치 제조가 열악해지는 가운데서도 매우 우수한 균일성과 뛰어난 생산성으로 처리량이 매우 높아 비용 절감에 탁월하다.
또한 GEMINI a-Si 막은 20nm 이상의 고급 DRAM 및 로직 디바이스를 위한 DPT/QPT 하드 마스크 패터닝 솔루션에 널리 사용된다.
특히 이번 전시회에는 이용한 원익 회장겸 세미(SEMI) 국제이사회 의장이 전시장을 방문해 자사 직원 및 회원사 관계자들을 격려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는데, 한국 반도체 산업의 위상을 높이고, 대만 반도체 장비, 소재 시장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패키징 업체로서는 한미반도체가 참가했는데, 이번 전시회에서 신제품인 3세대 ‘플립칩 본더 3.0’ 장비를 선보였다.
이 제품은 이전 모델대비 생산성과 정밀도를 대폭 개선했고, 핸들링 성능도 강화했다. 고사양 반도체 패키지를 많이 생산하는 대만 업체들로부터 긍정적인 반응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한미반도체는 신제품 발표와 더불어 메인스폰서를 맡았는데 한미반도체 또한 대만 시장 공략을 위해 상당히 신경을 썼다고 보였다.
반도체 검사장비 영역에서는 일본의 도레이, 미국의 NI 등이 부스를 꾸리고 최신 계측기술을 선보였다.
이외에도 5G 시대를 대비한 반도체 화합물 업체들도 대거 참가해 최신 GaN, SiC 및 GaAs와 같은 고성능 전력 및 화합물 반도체 기술을 선보였다.
또한 중고 장비 시장도 열려 현장에서 제품을 소개하고 거래가 이뤄지기도 했다.
전시회와 더불어 이번 방문에서는 징허 가스라는 현지 업체를 방문하기도 했다.
징허 가스는 40년 이상의 산업가스 노하우를 가지고 있는 기업으로 2003년에 특수가스 부문이 새로 출범했다.
NF₃, NH₃, N₂O, 고순도 CO₂, 네온, 제논, 헬륨 등 전자 및 혼합가스 수십 종을 취급하고 있었다. 주요 고객사로는 TSMC 등 대만 대표 전자 기업들이 있으며, 베트남, 태국 등에도 특수가스 및 케미컬을 공급하고 있었다.
품목 등을 살펴보면 국내 일반 특수가스 업체들이 모두 취급하고 있는 품목들을 취급하고 있기에 큰 관심을 두지 않을 수도 있지만, 국내 기업 관계자들은 해외 시장에서의 공급망 및 네트워크 확대와 함께 대만 시장에서 각광받고 있는 품목의 시장 조사를 위해서라도 이번 방문은 의미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이번 방문에서 의미심장하게 들렸던 한마디는 참관단 중 어떤 분이 징허가스의 프레젠테이션을 경청하며, “오늘 세미콘에서 본 것들을 여기서 다 설명하네” 였다.
하나하나 따로 떼어놓고 설명하면 관련이 없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종합적으로 돌아보면 특수가스, 반도체 장비, 검사장비, 계측장비 등등 반도체 산업에 있어서 모두 필요한 요소들이다.
이번 세미콘타이완을 살펴보고 느낀 점은 대만의 분위기는 분명 한국의 화려함이나 역동적으로 미래를 창조하는 분위기와는 다르게 정적이지만, 자신의 강점은 분명히 지키며, 묵묵히 앞으로 나가는 정중동(靜中動)의 진지한 모습이었다.
한국에서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삼성디스플레이, LG디스플레이 등 세계를 호령하는 최고의 기업들만 눈에 들어와 다른 기업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었다.
자신의 브랜드를 가지고 최고의 반도체 제품을 생산하는 삼성전자 같은 기업이 있는가하면, 자신이 가진 최고의 기술을 가지고 남들이 원하는 반도체를 대신 생산해 주는 TSMC 같은 대만 기업도 있다.
세계 최고의 CPU는 인텔, AMD 등이 만들지만 CPU를 구동시킬 메인보드는 ASUS, GIGABYTE 같은 대만의 기업이 만들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인기 스마트폰인 애플의 아이폰조차도 대만의 폭스콘의 손을 빌리고 있다.
대만의 전자 및 반도체 산업은 화려함보다는 소리 없는 강자로서 세계 속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그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기술 혁신에 나서고 있으며, 자기 자리를 꾸준히 유지하려는 모습도 살펴볼 수 있었다.
어떤 참관객 중에서는 ‘세미콘타이완 2017’이 한국, 중국에 비해 전시 규모가 작고 볼 것이 부족하다는 의견도 있었다.
이는 분명 맞는 말이다. 반도체 산업의 꽃을 피우고 있는 한국과 막대한 자본을 가지고 국가적으로 적극적으로 육성하는 중국에 비해 전시회 규모가 작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과거 찬란한 전자산업의 영광이 사그라지고 있는 일본을 생각해보면, 묵묵히 자신만의 길을 가고 있는 대만 반도체 장비, 소재 업계의 그 무거운 발걸음은 진중하며, ‘세미콘타이완 2017’ 전시회 또한 자신의 모습이 건재하며, 따라올 테면 따라오라고 자신감을 내보이는 ‘무게 있는’ 전시회로 느껴졌다.
분명 지금 한국의 반도체 및 반도체 장비, 소재 기업들은 세계 속에서 찬란히 빛나는 영광의 순간을 맞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세미콘타이완 2017’을 계기로 대만 전자 산업의 강점을 배워 자신의 영역을 확실히 구축하고, 먼 미래에도 굳건히 흔들리지 않는 영향력을 가질 수 있는 힘을 유지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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