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첨단산업 선점, Ti 원천기술 확보에 달렸다
■ ‘타이타닉호’엔 타이타늄이 들어가지 않았다
타이타늄(Titanium)은 원자번호 22번의 원소로 이름은 1795년에 발견한 독일 화학자 클라프로트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거신(巨神) 종족인 타이탄(Titans)에서 따서 지었다.
우리가 잘알고 있는 타이타닉호(1912년 침몰)도 여기서 유래됐다. 타이타늄이 산업용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제련기술이 본격화 된 1950년 이후의 일이라 타이타닉호엔 타이타늄이 전혀 적용되지 않았다.
타이타늄의 사용 역사가 이처럼 짧은 것은 추출하기 힘든 대표적인 희소금속이기 때문이다. 타이타늄은 산소와 결합력이 강해 추출이 힘들고 이 과정에서 에너지도 많이 사용된다. 또한 철강생산과 달리 연속공정이 아닌 간헐적 처리방법인 배치(batch) 공정으로 생산해야 하며 마그네슘을 환원재로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생산비가 비싸다는 단점이 있다.
그러나 미·소냉전 시기에 원자탄을 실어 나르기 위한 대륙간 탄도미사일, 초음속 전투기, 인공위성 등 경쟁적인 군축경쟁으로 인해 국가 주도로 기술개발되고 사용이 늘어났으며 냉전 후엔 비로소 타이타늄이 민수시장에서 유통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타이타늄은 개발된지 6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미국, 러시아, 일본, 중국 등 소수국가만이 원천기술을 보유하고 있을 정도로 전략 핵심소재이기도 하다.
■韓 타이타늄 제련·용해시설 全無
타이타늄 산업의 밸류체인은 원료→소재→부품·가공→완제품으로 구성된다. 타이타늄의 원료는 타이타늄 함량에 따라 저순도 일메나이트(Ilmenite, 타이타늄철석)광석(45~65%)과 고순도 루타일(Rutile, 금홍석)광석(92~98%)으로 구분되는데 저순도광은 고순도광 대비 매장량은 20배, 가격은 톤당 약 300달러로 1/4 수준이다. 세계적인 매장국과 채굴국은 호주, 남아공이며 우리나라도 연천·하동에서 저순도광이 생산돼 국내 철강업체에 노벽보호제로 쓰이고 있다.
이들 원광석을 제련하면 고순도의 금속소재 또는 세라믹소재를 제조할 수 있다. 대부분 원광석은 금속보다는 세라믹소재로 사용되는 이산화타이타늄(TiO₂) 생산에 사용된다.
우선 타이타늄 금속을 얻는 과정을 살펴보면 일메나이트 또는 루타일을 염소 및 탄소와 반응시켜 사염화타이타늄(TiCl₄)을 얻어내고 이를 아르곤(Ar) 기체가 든 밀폐된 노에서 용융된 마그네슘(Mg)으로 환원시켜 타이타늄 스폰지를 제조한다. 이를 갈아서 가루로 만들고 이를 다시 용해하면 잉곳으로 제조된다. 이 과정에서 합금원소를 첨가하여 용해하면 합금 타이타늄을 제조할 수 있다.
미국, 러시아, 카자흐스탄, 우크라이나, 일본, 중국 등 5개국만이 타이타늄 금속제조기술을 보유하고 있으며, 우리나라는 주로 카자흐스탄, 일본, 미국, 중국 등으로부터 전량 수입하고 있다. 재료연구소와 (주)옥산IMT가 함께 1톤 규모의 스펀지 시제품을 생산하는데 성공하기도 했으나 국제 스폰지 가격하락 등 경영환경 변화로 상업화까지 진행하지 못했다.
안료 등으로 사용되는 백색 세라믹소재를 만드는 과정을 살펴보면 원광석을 황산법과 염산법을 통해 TiO₂를 생산할 수 있는데 루타일(rutile)형, 아나타제(anatase)형이 있다. 루타일형은 자동차, 항공기 등 외장용 백색안료로, 아나타제 형은 플라스틱, 제지 등 내장용 백색안료 및 촉매담체로 사용된다.
전세계 TiO₂ 시장규모는 551만톤으로 이중 루타일형이 496만톤으로 90%를 차지하고 아나타제형이 55만톤으로 나머지를 점유하고 있다. 공법별로 살펴보면 순도가 높은 고급 안료를 만들 수 있는 염소법을 통한 루타일형 생산량이 326만7천톤으로 전체 59%를 차지하고 있고 황산법을 통한 루타일형이 169만5천톤(31%), 아나타제형이 55만톤(10%)으로 뒤를 잇고 있다.
특히 염소법의 경우 미국(Dupont, Tronox, Huntsman), 독일(Kronos), 일본(Ishihara), 사우디(Cristal) 등 4개국만이 제조 기술을 보유하고 있으며 황산법은 중국에서 대부분 생산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코스모화학이 황산법을 통해 이나타제형, 루타일형 TiO₂를 생산하고 있다.
세계시장 33조·국내시장 1조, 주력산업 수요확대
우주항공·의료·플랜트 필수소재…2025년 600조
■韓, 해수담수화 설비용 판재·부품 가공 활발
부품가공 단계는 타이타늄 스펀지를 용해해 타이타늄 잉곳을 제조하고 이를 주조, 단조 등을 통해 판, 봉 등으로 가공하는 과정이다. 잉곳 이후 나머지 공정은 철강생산과 유사하다.
미국의 ATI, Timet, RTI, 러시아의 VSMPO-Avisma, 일본의 Kobe, JFE, NSC, 중국의 Baoji, Fanzhwa 등이 대표적인 제조공장이다. 국내에선 포스코가 지난 2010년부터 카자흐스탄의 UKTMP와 합작을 통해 잉곳을 현지에서 생산해 국내에 가져와 압연을 거쳐 두산중공업에 해수담수화 설비용 판재를 공급하고 있다.
마지막 완제품 단계는 판재, 봉재 등의 중간재를 성형해 열교환기, 화학용기, 항공우주용 부품 등에 사용되는 제품을 주조, 단조, 가공, 열처리, 표면처리 등을 통해 생산하는 과정이다.
세계적인 항공·자동차 메이커인 에어버스, 보잉, 롤스로이스 등은 타이타늄 부품을 완제품에 적용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선 풍산발리녹스, 신한금속, 이스트벨리, KE&P 등이 원자력 발전 및 해수담수화 설비에 필요한 타이타늄 튜브를 생산해 주로 두산중공업에 납품하고 있다. 그러나 경기침체로 중동에서의 플랜트 수주가 줄어들면서 타이타늄 튜브 공급과잉으로 업체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밖에 TSM Tech은 타이타늄 판재를 가공하여 화학용 대형 반응용기 등을 제조하고 있으며, KPCM은 석유화학 플랜트용 타이타늄 밸브 등을 생산하고 있다. 현재 세계 최종제품에 사용되는 타이타늄은 항공우주 5만9,200톤, 일반산업 8만6,700톤, 의료 및 기타산업 1만9,100톤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소수 선도국 Ti ‘무기화’, 전량수입 韓 ‘속수무책’
원료-리사이클 산업생태계 구축, 소재독립 必
■2015년 세계 Ti 33조원 시장, 항공 견인
타이타늄 소재시장은 과거 국방, 우주·항공이 주요 수요산업이었으나, 최근에는 조선·플랜트, 자동차, 의료 등으로 사용처가 확대되며 지속 성장하고 있다. 금속과 세라믹 등을 합한 타이타늄 세계시장 규모는 2015년 33조3천억원으로 성장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현재 페인트 안료, 플라스틱 첨가제 등으로 사용되는 세라믹 소재시장은 금속소재 대비 약 6배 크지만 타이타늄 금속소재가 적용된 부품시장은 약 120조원규모로 부가가치도 훨씬 높다.
세계 타이타늄 금속 시장은 2025년까지 연평균 6.3% 성장률을 기록하며 13조원에 달할 전망이다. 국내 타이타늄 시장은 2012년 기준으로 1조원 규모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지난 2008년부터 연평균 10%에 달하는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는데 이는 중동지역 대규모 해수담수화 플랜트 수주에 따른 것이다.
타이타늄이 적용되고 있는 주요산업을 살펴보면 항공산업분야가 전체 사용량의 36%를 차지할 정도로 높다. 미국 항공산업의 수요에 따라 스폰지 타이타늄 가격이 크게 변동할 정도인데 특히 2012년엔 보잉 787과 에어버스 A380, A350 등의 수요로 인해 타이타늄 소비가 급격히 증가해 연간 6만톤 규모의 타이타늄이 출하됐다. 타이타늄은 항공기의 랜딩기어, 배기계통, 날개구조물, 엔진 계통에 압축기 블레이드와 휠 및 로터 등으로 사용되고 있다.
항공기의 대형화로 인해 경량화 소재인 탄소복합소재 사용량이 증가함에 따라 탄소복합소재와 열팽창계수와 갈바닉 부식의 우려가 없는 타이타늄의 사용량도 증가하고 있다. 경량화 부품으로 지속 적용됨에 따라 항공 관련 2020년 세계 타이타늄 시장규모는 2010년 대비 50% 증가한 6천억달러로 예상되고 있다.
항공기와 함께 타이타늄 사용이 활발한 산업은 열교환기, 석유화학 관련 제품, 발전기 변속기 관련 시장 등이 있다. 특히 플랜트산업의 경우 셰일가스 등 자원개발이 활성화되면서 2020년엔 1조5,810억달러 시장을 형성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타이타늄 부품 가격이 전체 플랜트비용의 5%를 자치함을 감안하면 큰 성장이 예상되고 있다.
■생활소재로 자리매김
타이타늄은 주방용품부터 보석 및 운동용품 등 소비재에 널리 사용되고 있는데 2012년 기준으로 약 1만톤이 사용됐다.
이중 타이타늄이 가장 많이 사용되는 제품은 골프채다. 다른 소비재 전체를 합친 것보다 많은 양이 사용되고 있는데 우드 클럽의 헤드는 대부분 타이타늄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70% 정도의 타이타늄 골프채는 중국과 대만에서 OEM 방식으로 생산 중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하나산업사 등에서 용접볍으로 맞춤형 골프채가 소량 생산된다.
생체의료용 시장도 의료기술 발달 및 노령화의 영향으로 급성장하고 있다. 타이타늄은 체내의 조직이나 혈액과 반응을 하지 않아 의료기기로 널리 사용되고 있는데 특히 임플란트 핵심소재로 연간 3억달러 규모의 원자재가 사용되고 있다.
타이타늄은 1950년대부터 수술에 사용됐으며 2010년 기준으로 3천톤 규모의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다양한 중소기업에서 외과용 및 치과용 임프란트 등이 가공되어 시술에 적용하고 있다. 대표적인 기업으로는 오스템임프란트, 코렌텍 등이 있다.
특히 요즘 이슈가 되고 있는 3D프린팅 기술을 산업에 본격 적용하기 위해선 타이타늄 분말 생산기술 확보가 요구되고 있다. 장비업체들은 자체 장비에 전문화된 3D프린팅용 타이타늄 분말을 비싸게 파는 정책을 취하고 있다.
금속 3D프린팅 장비 활성화는 금속분말 가격하락에 달려있을 정도지만 국내에서 3D프린팅용 금속분말을 제대로 만드는 기업은 없는 상태다. 최근 들어 고려용접봉, MTIG 등의 기업에서 수소-탈수소법으로 분말을 소량 생산하고 있다.
■밸류체인 연결로 산업생태계 조성해야
우리나라 기업들은 타이타늄 가공기술을 바탕으로 그간 타이타늄을 수입해 제품을 만들어 이익을 창출했지만 중국기업의 추격과 과점시장을 형성하고 있는 원료시장의 공급불안은 우리 기업들의 경쟁력 하락으로 직결된다.
특히 국내엔 원료-원천소재와 리사이클-시험인증 등 산업기반이 없는 탓에 대부분의 소재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어 타이타늄 산업발전과 부가가치 창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또한 초내식성, 고온 구조용, 의료용 등의 목적으로 타이타늄 수입시 생산국의 전략물자 통제로 인해 자유롭게 사용하지 못하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 선도국에 대한 전략소재 기술종속이 심화되면 기존 주력산업 경쟁력 약화는 물론 항공, 의료 등 미래첨단산업에 진입 실패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때문에 이러한 족쇄를 끊기 위해선 저원가 고품질 타이타늄 소재 원천기술 확보와 국가가 앞장서 밸류체인을 연결해 산업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되고 있다.
이에 활용도가 낮고 가격도 안정적인 타이타늄 저순도광을 이용해 타이타늄 생산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혁신적인 기술개발이 거론되고 있다. 대체소재에 비해 가격이 높은 타이타늄의 단점을 개선해 수요를 늘리기 위해서 선진국들은 스폰지 저가 생산을 위한 신공정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선진국 기술을 추격하기 보다는 저가 원료를 활용한 원천소재 제조기술 개발방법을 개척해야 승산이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또한 저가의 폐스크랩을 활용하여 고품질·고부가가치 금속 소재로 재제조하는 기술확보, 3D프린팅용 금속분말 제조기술 개발, 고급 세라믹 안료(TiO₂) 양산제조기술 개발 등도 거론되고 있다.
특히 최근 타이타늄 스폰지 가격이 경기침체와 공급과잉으로 인해 낮은 수준을 기록하고 있어 도전적으로 개발에 나설 적기다.
여기에 우리나라는 철강·화학 등 소재산업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린 경험과 인프라가 구축돼 있고 철강을 비롯한 일부 비철금속 제련사업도 추진하고 있다. 조선, 플랜트, 화학, 자동차 등 세계 최고 수준의 완성품 업체도 다수 있어 타이타늄 수요처 확보도 유리하다.
다행히 우리 정부가 타이타늄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13대 산업엔진 프로젝트 중의 하나로 선정, 내년부터 △타이타늄 원천소재기술개발 45억 △대형판재가공기술 18억 △의료 금속소재개발 14억 △시험인증 기반구축 10억 등 총 87억원의 예산 투입에 나선다. 항공, 의료 등 첨단산업분야에 진출하기 위해선 시험·인증이 필수적이니 만큼 시험인증 인프라는 해외에 맡기는 비용과 시간을 절감하고 시장진출 발판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정부는 항공, 의료, 플랜트 기업 등 타이타늄 수요기업과 소재공급기업이 함께 참여해 정책과제 발굴, 협력강화 등을 추진하도록 ‘타이타늄 산업발전협의회’도 구성키로 했다. 중장기적으로는 민간이 자율적으로 발전방안을 추진하기 위해 수요기업과 소재공급기업으로 구성된 ‘타이타늄산업협회’ 설립도 검토되고 있다.
이러한 노력의 씨앗이 타이타늄 소재강국이라는 뿌리로 자라 향후 우리 주력산업을 받치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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