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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3-01-15 19:4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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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D출발, 핵심기술 선정에 달렸다.


■ 성공한 Fast-follower의 깊어지는 고민

한국 경제는 지난 50년간 경공업, 중화학공업, 자동차, 전자 및 IT 등 다양한 제조업 분야에서의 성공 체험을 바탕으로 국내 총생산 연평균 12.3%, 수출 연평균 17.9%의 성장을 실현, GDP 기준 세계 15위, 교역규모 기준 세계 8위로 도약했다. 특히 1980년대 음향기기 수출을 시작으로 폭발적 성장세를 보인 전자제조업은 반도체, 휴대폰, 디스플레이 등의 첨단 IT 제품에서 세계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하며 국가 주력 산업으로 자리매김했다.(<표 1> 참조).

▲ <표 1 > 주요 산업에서의 한국의 위상.

▲ GDP 대비 R&D 투자 및 설비투자 비중( R&D 투자 ↑, 설비투자 ↓).

◇ 성장의 견인차 설비 투자와 R&D 투자

이러한 성장의 이면에는 설비와 과학기술에 대한 투자가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80년대까지 선진 산업과 제품을 모방하고 기술을 이식해 빠르고 싸게 제품을 만들어 내는 것이 성장의 방식이자 중요한 과제였다. 그러나 90년대 들어 기존의 모방·이식형 접근에서 진화한 기술혁신형 접근이 본격화 됐다. 당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R&D투자가 이뤄졌고, 이를 통해 확보한 기술을 바탕으로 제품을 생산하기 위한 대규모 설비투자가 이어졌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의 R&D투자는 설비투자에 후행 또는 선행하면서 <그림 1>에서 보는 것처럼 그 비중이 지속적으로 증가해 왔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 이러한 성장 방식에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R&D투자 비중은 더욱 빠른 속도로 증가하는 반면, 설비투자 비중은 오히려 감소세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90년대까지 Fast-follower로서 빠르고 효율적으로 선도 기업을 따라 잡으며 성장을 거듭해 왔으나, 이런 방식의 성장이 한계에 달해 또 다른 성장 모델로 이행하는 과도기를 거치고 있다.

■ 혁신 제품 뒤엔 탁월한 기술 역량

혁신적인 아이디어의 출발점으로서든, 기회를 구현해 주는 수단으로서든, 제품 혁신과 기술은 분리해 생각할 수 없다. 물론 혁신에서 기술의 역할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경우 ‘기술 만능주의’, ‘기술 지상주의’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그렇지만 지속적인 제품 혁신을 통해 꾸준히 시장을 선도하는 기업에는 항상 탁월한 기술 역량이 뒷받침되고 있으며, 아무리 뛰어난 혁신 아이디어라도 기술 역량을 통해 구체화 되지 못하면 컨셉과 페이퍼만으로 존재하고 시장에서의 실질적 가치로 연결되지 못한다.

Business Week, Forbes 등에서 매년 선정·발표하는 글로벌 Top 혁신 기업에 단골로 이름을 올리는 대표적인 선도 기업들을 보면 공통적으로 핵심기술의 기반역량이 강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캐논이나 인텔과 같이 탁월한 기술력을 기업의 정체성으로 삼는 전통적 기술기업만이 아니라, 기술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고 혁신의 다른 요소들을 강조하는 기업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모든 선도 기업이 핵심기술과 관련해 형식지적 성격의 응용기술력보다 암묵지적 성향이 강하고 누적적 특징이 큰 기반 기술 역량이 뛰어나다는 것이다. 선도 기업들은 다양한 시도와 경험을 통해 풍부한 ‘암묵적 지식(tacit knowledge)’과 ‘흡수역량(absorptive capacity)’을 체화해 보유하고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혁신 제품을 만드는데 필요한 원천기술을 직접 개발하거나 외부 탐색/협력을 통해 빠르게 확보해 나가고 있다.

고객가치·수익창출 기여 기술만 생존

혁신 아이디어, 기술역량 뒷받침 돼야



◇ 독자적 원천 기술 개발

시장을 선도하는 혁신 기업들이 독자 기술을 추구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제공하고 싶은 가치를 구현할 수 있는 기술이 존재하지 않는 경우와, 경쟁사와 명확한 차별화가 필요한 경우이다. 1995년 영화 <토이 스토리>를 개봉한 픽사는, 컴퓨터 그래픽스 애니메이션이라는 새로운 예술 장르를 개척하는 과정에서 해당 공학 분야까지 함께 선도했고, 그 결과 각종 영화제 수상 기록 못지않게 풍성한 원천기술 및 특허 목록을 보유하게 됐다.

이러한 원천기술을 바탕으로 첫 작품을 내놓은 지 20여년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도 선도 기업으로 혁신적인 작품을 끊임없이 선보이고 있으며, 매 작품의 스토리와 캐릭터, 예술적 성취를 위해 새로운 렌더링 엔진을 개발하는데 타협 없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최고 수준의 독자 기술을 추구하는 것으로 널리 알려진 캐논의 경우, 애초의 기술개발 목적은 선발 주자의 원천기술을 회피하는 것이었다. 후발주자로서 카메라와 복사기 시장에 진입한 캐논은, 라이카와 제록스의 원천기술을 회피하기 위해 독자 기술 연구개발에 매진, 성공적으로 자신만의 원천기술들을 개발할 수 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지적재산권 방어를 넘어서 자신의 제품에 차별적인 가치를 담을 수 있게 됐다.

기업들은 독자적인 원천기술이 시장을 선도하는 제품혁신의 중요한 요소임을 인정하지만, 원천기술 개발을 위한 R&D에 적극적으로 투자하기는 생각만큼 쉽지 않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기술의 성공 여부에 대한 불확실성이 매우 크다는 점이다. 원천기술 라이센싱으로 막대한 수익을 창출하며 꾸준히 대규모 투자를 하는 퀄컴의 경우에도, 실제 제품화돼 수익으로 연결되는 기술 과제는 5% 미만에 불과하다고 한다. 둘째, 5%의 확률로 수익 창출에 성공한다 하더라도, 자원의 투입에서 이익의 회수까지 10년에서 20년의 오랜 기간이 소요된다는 점이다. 셋째, 기술이나 부품을 필요할 때 저렴하게 아웃소싱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고 보는 내부 견해가 생각 외로 깊다는 점이다. 특히 사업 상황이 좋지 않은 경우, 특성상 고비용의 연구 인력과 장비에 장기 투자가 필요한 원천기술 R&D는 기업에 상당한 부담으로 다가온다.

◇ 탐색과 협력

핵심기술의 기반역량을 바탕으로 한 독자적 원천기술 개발을 강조하는 방식이 직면할 수 있는 가장 큰 위기는, 불확실성을 감수하고 장기 투자를 거쳐 확보해 지금까지 큰 수익을 창출해 주었던 기술 포트폴리오가 시장에서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되는 순간이 오는 것이다. 이는 현재 인텔이 겪고 있는 상황이다. 집적회로의 발명에서부터 반도체 설계와 과학적 공정이란 측면에서 최고의 기술력을 자랑하고 있는 인텔은, 기술과 더불어 뛰어난 사업전략과 파트너십으로 시장에서 선도적인 위치를 유지하며 완성품(PC) 시장을 지배, 지속적으로 높은 수익을 창출해 왔다. 제품의 성능이나 전력소모 등이 이슈가 될 때마다 보유한 핵심기술 역량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 혁신적인 가치를 제공해 온 것이 사실이지만, 이제 기술역량만으로 극복하기 어려운 실리콘의 물리적 한계, PC에서 스마트폰으로의 시장 패러다임 전환, ARM을 필두로 하는 저전력 프로세서라는 ‘파괴적 기술(Disruptive technology)’의 등장 등으로, 지금까지의 성공을 견인해 준 핵심기술의 기반역량과 이에 기반한 원천기술 개발 역량만 가지고는 시장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다.

제품의 기능과 구성이 매우 빠른 속도로 고도화됨에 따라, 제품을 위해 준비해야 하는 기술의 범위와 깊이가 개별 기업이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 돼 가고 있다.

또한 현재는 협업의 생태계 시대로, 기업들이 독자적인 경쟁력 외에도 시장과 산업의 흐름을 읽으며 경쟁사, 협력사들과 함께 판을 만들어 가야 하는 시대라 할 수 있다.

이처럼 탐색과 외부 역량 활용에 강한 혁신 기업에서는 다음과 같은 특징이 공통적으로 발견된다. 가장 중요한 특징은 독자적 원천기술 개발 중심의 기업 못지않게 핵심기술의 기반역량이 뛰어나다는 점이다. 둘째, 이를 바탕으로 앞으로 어떤 기술이 제품 혁신의 key가 될 것인지 시장과 기술을 정확하게 읽어 내며 기술의 동향을 파악하고 자사의 기술을 마케팅하며 협업의 판을 만들어가는 역량이 뛰어나다. 셋째, 필요한 기술을 누가 가지고 있는지 파악하고, 그 기술의 가치를 올바로 평가해 빠르게 확보, 내재화한 후 제품에 적용해 성공시킨다.

■ 시장 선도를 위한 R&D의 역량

◇ 출발은 핵심기술의 기반역량으로부터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혁신을 바탕으로 시장을 선도하기 위해서는 성장전략에 맞는 핵심기술을 선정한 뒤 핵심기술의 기반역량을 강화해, 이를 바탕으로 시장에서 원하는 제품·서비스에 필요한 독자적 원천기술을 개발하거나, 적극적인 탐색과 흡수 역량을 통해 외부 역량을 흡수·활용해야 한다.

혁신제품을 위한 핵심기술을 확보하는데 있어 ‘독자적 기술개발’과 ‘탐색과 외부 역량 활용’의 두 가지의 큰 접근법이 존재하며, 시장 선도적인 혁신기업들은 스펙트럼 상에서 산업 특성과 기업 문화에 따라 두 가지 방법을 적절히 혼합해 활용되고 있다.

◇ 탐색과 외부역량 활용 중요성 ↑

독자적 원천기술 개발을 강조할 지, 탐색과 외부 역량 활용을 더 강조할지는 기업의 업종과 문화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그러나 최근의 정보전자기기와 같이 시장과 제품혁신의 속도가 빠르고 협업의 생태계가 비즈니스에서 큰 역할을 수행하는 환경에서, 탐색과 외부 역량 활용, 즉 search 활동은 점점 더 강조될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최근 해당 산업 분야의 리더들은 탐색과 협업 활동에 많은 비중을 두며 혁신해 가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탐색과 외부역량 활용만으로는 단기적으로 매우 효율적인 성과를 낼 수는 있겠으나, 핵심기술의 기반역량, 독자적 원천기술이 없이 외부역량만으로 지속적인 제품혁신을 이끌어가기는 어렵다. 핵심기술의 기반역량, 원천기술은 충분한 시간과 투자를 통해서만 축적된다는 점을 고려할 때, 가장 바람직한 제품혁신형 R&D의 모습은 독자적 역량과 원천기술을 바탕으로, 탐색과 외부역량 활용을 강화해 시장 변화에 효율적으로 대응하는 형태라 할 수 있다(<그림 2> 참조).

◇ 혁신은 재무성과로 이어져야

이 과정에서 몇 가지 유념해야 할 점이 있다. 독자적 원천기술 개발을 강조하든, 외부역량 활용을 강조하든 연구개발에는 공통적으로 자주 등장하는 문제가 있다.

첫째, 시장과 고객의 가치를 간과하고 기술을 위한 기술이라는 프레임에 갇히는 것이다. 과학의 영역에서는 진리의 탐구와 최고의 기술이 지상 과제이지만, 사업은 고객 가치를 통한 수익 창출이 그 목적으로, 기업에서의 기술은 반드시 고객 가치와 수익 창출에 기여해야 한다는 점이다.

둘째, 기술을 잔뜩 개발하거나 쇼핑해서 쌓아 두고 사업에 사용하지 않는 것이다. 이렇게 방만하게 기술 포트폴리오를 운영하면 해당 기술에 투자한 자원의 회수가 어려울 뿐 아니라, 다른 잠재 기술에 투자할 여력을 소진하게 되므로 철저히 지양해야 한다.

세번째는, 그렇다고 수익 추구에 대한 잘못된 강박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기술에서 가치를 이끌어내고 극대화 해 수익으로 연결해야 하나, 수익에 대한 압박이 지나친 경우 연구개발 비용을 줄여 수익을 맞추려는 잘못된 접근으로 빠질 가능성이 높다. 이는 연구개발에 필요한 임계점 이상의 자원이 투입되는 것을 막아 가치 창출을 더 멀고 어렵게 하는 역효과와 악순환을 초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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