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나라 조선사의 2009~2011년과 2023~2025년 선종·선형별 건조 척수(단위: 척)경제안보, 특히 해양안보 강화를 위해 정부와 산업계가 힘을 모아 범용선박 생태계를 재건해야 한다는 정책 제언이 나왔다. 미·중 갈등과 글로벌 공급망 불안이 장기화되는 가운데, 한·미 조선 협력 확대를 위해서도 국내 조선산업의 선종 다변화와 해운 연계 강화가 시급하다는 분석이다.
산업연구원(KIET)은 14일 발표한 ‘경제안보와 한·미 조선 협력을 위한 선종 다변화와 해운 연계 방안’ 보고서를 통해 우리나라 조선·해운산업이 현재 ‘해외 해운·선박 의존 → 국내 조선산업 생태계 악화 → 경제안보 역량 약화’라는 구조적 악순환에 놓여 있다고 진단했다.
보고서는 특히 2023년 홍해 사태와 2026년 중동 정세 불안 등 글로벌 해상 물류망 충격이 반복되면서 무역의존도가 높은 한국의 해양안보 리스크가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 국내 수출입 물동량의 상당 부분이 외국 선사에 의해 운송되고, 국내 해운사가 발주하는 주요 선박도 해외 조선소 의존도가 높아 유사시 공급망 차질 가능성이 크다는 설명이다.
특히 국가필수선박의 해외 의존도가 심각한 수준으로 분석됐다. 국내 국가필수선박 가운데 척수가 많은 벌크선과 자동차운반선은 해외 조선소 건조 비중이 높고, 최근 3년간(’23~’25) 국내 해운사 발주 물량 역시 벌크선·자동차운반선·중소형 유조선·컨테이너선 대부분이 중국 조선소로 향했다. 향후 국가 핵심 물류자산이 중국산 선박으로 대체될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다.
이 같은 문제는 미국도 예외가 아니다. 미국 역시 유사시를 대비해 안보선대(Security Fleet)를 운영하고 있지만, 중소형 RORO선과 자동차운반선, 컨테이너선, 유조선 등 주요 선박 상당수를 해외 조선소에 의존하고 있다. 최근 도입된 일부 컨테이너선과 거중선은 중국에서 건조된 것으로 나타나면서, 자국 조선·해운 산업 재건이 국가안보 과제로 부상하고 있다.
미국이 자국 조선·해운 산업 재건을 추진하며 한국과의 조선 협력 확대를 요구하는 가운데, 국내 범용선박 건조 역량 확보가 핵심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그러나 한국 조선업은 LNG운반선 등 고부가가치 선박 분야에서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지만, 벌크선·자동차운반선·중소형 유조선·컨테이너선 등을 건조하던 중형·중소 조선소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대규모 구조조정을 겪으며 산업 기반이 크게 약화됐다.
여기에 중국 대비 낮은 가격·기술 경쟁력, 제한적인 금융지원, 범용 조선기자재 산업 약화, 우량 해운사 부족 등이 겹치며 산업생태계 전반의 경쟁력이 흔들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고부가 선박용 기자재 기업은 호황을 누리고 있지만 범용선 중심 기자재 업체들은 시장 축소와 가격 경쟁 심화로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선수금환급보증(RG) 부족과 설계·엔지니어링 역량 약화도 중형·중소 조선사의 재도약을 가로막는 요인으로 지목됐다.
해운산업의 구조적 한계도 지적됐다. 한국은 세계 4위 수준의 선복량을 보유하고 있지만 실제 발주 규모는 세계 7위 수준에 머물고 있다. 대형 발주가 가능한 우량 선주가 부족하고, 주요 해운사의 사모펀드 중심 지배구조가 장기적인 선대 확충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에 KIET는 해결책으로 ‘국가필수선대 확대 → 경쟁력 있는 해운 선복량 확보 → 국내 조선산업 생태계 강화 → 안보 역량 강화 및 한·미 조선 협력 성공’이라는 선순환 구조 구축을 제시했다. 이를 위해 국가필수선박 확대와 함께 국내 건조 유인을 높일 수 있는 가격 지원, 한국형 선주사업 확대, 선박금융 및 세제 지원 강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대형 조선사와 중형·중소 조선사의 협력 모델 구축도 제안했다. 대형 조선사가 설계와 엔지니어링을 지원하고, 중형·중소 조선사가 실제 건조를 담당하는 방식으로 산업 기반을 복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표준선형 개발, 국산 기자재 확대, Korean Register 중심의 검사체계 효율화 등도 병행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은창 KIET 연구위원은 “경제안보와 한·미 조선 협력은 조선업계만의 과제가 아니라 정부와 화주, 해운사, 조선사, 기자재업계, 금융권이 함께 풀어야 할 국가적 과제”라며 “범용선박 생태계 재건 없이는 해양안보 강화도, 조선 강국의 지속가능성도 담보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