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동발 에너지 충격을 계기로 재생에너지 전환의 전략적 가치가 재조명되는 가운데, 실질적 전환을 위해서는 구조적 제약 해소와 전력·공급망 전반을 아우르는 선제적 대응 전략이 요구된다는 분석이 제시됐다.
산업연구원(KIET)은 12일 ‘중동 전쟁은 재생에너지 전환을 가속할 것인가’ 보고서를 발표, 중동 사태 이후 재생에너지 전환 필요성이 전 세계적으로 부각되고 있으나, 단기적 가속을 제약하는 구조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월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선제공격 이후 호르무즈 해협 봉쇄와 중동 에너지 생산 차질이 이어지며 석유·가스 공급 불안과 가격 급등이 심화됐다. 이에 따라 에너지 안보와 자립 확보 수단으로 재생에너지 전환에 대한 관심이 빠르게 확산되는 양상이다.
다만 이번 위기가 곧바로 재생에너지 중심 체제로 이어지기는 어렵다는 진단이다. 화석연료 가격 상승은 인플레이션과 금리 인상을 유발해 자본 조달 비용을 끌어올리고, 이는 재생에너지 투자 부담을 확대시키는 ‘투자 비용 역설’로 작용한다. 동시에 디젤 가격 상승 등은 설비 건설과 광물 개발 비용을 증가시켜 공급망 부담까지 키우는 이중 압박으로 이어진다.
단기적으로는 에너지 공백을 메우기 위한 화석연료 대체 움직임도 확대된다. 실제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유럽은 LNG 수입을 늘렸고, 최근에는 석탄 수요까지 증가하며 전통 에너지원 회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는 재생에너지 확대가 기존 에너지를 대체하기보다 총에너지 수요 증가 위에 더해지는 ‘에너지 추가’에 머물고 있음을 보여준다.
여기에 인공지능(AI) 산업 확산에 따른 전력 수요 급증도 변수다. 데이터센터 중심의 전력 소비가 빠르게 늘어나면서 에너지원의 친환경성보다 공급 안정성과 속도가 우선되는 구조가 강화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가스 발전 등 기존 에너지원 의존도가 오히려 확대되는 흐름이 감지된다.
공급망 측면에서는 ‘광물 병목’이 새로운 제약으로 부상했다. 재생에너지 시스템이 연료 중심에서 광물 중심 구조로 전환되면서 구리·리튬·희토류 등 핵심 자원의 확보 경쟁이 심화되고 있다. 그러나 신규 광산 개발에는 장기간이 소요되고, 특정 국가에 정제 역량이 집중돼 있어 공급 리스크가 상존한다.
또한 재생에너지 발전 단가 하락과는 별개로, 전력망·저장장치·백업설비 등 기존 시스템과의 통합에 필요한 총체적 비용 역시 간과할 수 없는 부담 요인으로 지목된다. 단순 설비 확충을 넘어 제도, 금융, 인력, 공급망까지 포함한 통합적 접근이 필요한 이유다.
이에 보고서는 재생에너지 전환을 실질적으로 가속하기 위한 세 가지 대응 방향을 제시했다. 우선 차액결제계약(CfD)과 장기 고정가격 계약 등을 통해 투자 안정성을 확보하고, 전력망을 포함한 에너지 인프라에 대한 선제적 투자를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단순한 설비 확대를 넘어 에너지 수요 자체를 줄이고 화석연료 사용을 억제하는 구조적 전환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건물·산업 부문의 효율 개선, 전기화 확대, 탄소가격 체계 강화 등이 병행될 때 실질적인 전환이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아울러 공급망 리스크 완화를 위해 자원 외교와 국제 공조를 기반으로 광물 조달 및 비축 전략을 강화하고, 공급망 다각화를 추진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동시에 전환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수급 불균형에 대비해 화석연료 공급 안정성도 일정 수준 유지하는 균형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산업연구원 산업탄소중립연구실 박유미 연구원은 “중동발 에너지 위기가 재생에너지 전환의 필요성을 분명히 드러낸 계기인 만큼, 단기 대응을 넘어 구조적 제약 해소와 장기 전략 수립을 병행해야 전환의 실효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