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용 가스는 생명 지키는 전문의약품,
價 현실화가 곧 국가 의료 안전망 근간”

■협회가 출범한 지 8년 차에 접어들었다. 그간 업계에 남긴 가장 큰 변화는 무엇인가
가장 본질적인 변화는 우리 업계가 단순한 가스 공급업자를 넘어, 환자의 생명을 지키는 ‘필수 의약품 제조사’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한 데 있다. 과거 의료용 가스는 산업용 제품과 혼용되거나 범용 공산품으로 취급받는 등 제도적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 그러나 2018년 GMP 전격 의무화 이후, 협회를 필두로 엄격한 품질 기준을 현장에 안착시키며 업계 전반의 질적 고도화를 견인했다.
이러한 내실화는 대관(對官) 관계에서의 실효적 결과로 이어졌다. 개별 기업이 대응하기 어려웠던 보험수가 문제를 공론화해 지난 2022년, 무려 21년 만에 상한금액 인상을 이끌어낸 것이 대표적이다.
특히 지난해 8월 단행된 ‘약제의 결정 및 조정 기준’ 개정을 통해 산소(O₂)와 아산화질소(N₂O)가 실거래가 상한금액 조정 제외 대상으로 확정된 것은 협회 행보의 정점이자 역사적인 결실이다. 이는 정부가 의료용 가스의 특수성과 공공성, 그리고 제조원가 상승의 고충을 제도적으로 인정했다는 방증이며, 안정적인 공급망 유지를 위한 튼튼한 안전판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협회는 지난 8년간 불합리한 규제의 문턱을 낮추고, 잦은 약가 인하 압박으로부터 회원사를 보호할 수 있는 제도적 안전판을 마련함으로써 안정적인 의약품 공급망 유지를 위한 초석을 다졌다고 자부한다.
■현재 의료용 고압가스 업계는 가격, 인력, 안전 등 여러 과제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이러한 난국 속에서 최우선 대응 과제는 무엇인가
무엇보다 파편화된 비용 구조를 바로잡는 ‘원가 체계의 현실화’가 시급하다. 현재 우리 산업은 전기요금과 인건비가 폭등하는 상황에 직면해 있으나, 보험수가는 20년 전 수준에 머물러 있다. 특히 국내 의료용 산소 단가가 선진국의 10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우리 업계의 한계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가장 주목해야 할 지점은 물류 비용의 구조적 불합리성이다. 의료용 가스는 일반 의약품처럼 택배로 보낼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전문가가 고압 용기를 전용 차량에 실어 병동 깊숙한 곳까지 직접 이송·설치해야 하는 물류 집약적 산업이다. 하지만 현행 제도에는 배송 거리, 도서·산간 지역의 특수성, 용기 대여료 같은 실질적 비용이 전혀 반영되지 않고 있다. 결국 제조원가보다 높은 운송비를 투입하면서도 정당한 보상을 받지 못하는 기형적인 구조를 개별 기업들이 오롯이 감내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현실을 방치하면 공급망 붕괴라는 사회적 위기로 이어져 국민 건강권을 위협할 수 있다. 따라서 이제는 가스 가격과 서비스 비용(운송·렌탈·유지보수 등)을 분리하는 선진적 계약 문화를 정착시켜야 한다.
■정부나 유관기관과 제도 논의를 진행할 때, 업계를 대표하는 창구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현장에서 느끼는 한계나 과제는 어떤 부분인지
가장 큰 실무적 장벽은 정부 당국이 의료용 가스를 바라보는 시각의 불일치에 있다. 보건복지부나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등 유관기관은 여전히 의료용 가스를 일반 알약이나 주사제 같은 ‘제형 의약품’의 잣대로만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의료용 가스는 자연 기화로 인한 배송 손실이 불가피하고, 24시간 대응 체계를 유지해야 하기에 막대한 안전 관리 비용이 수반되는 특수 의약품이다. 규제는 의약품 수준인데 보상은 공산품 수준에 머물러 있는 구조적 모순이 우리 업계가 직면한 가장 큰 한계다.
또한 개별 회원사마다 물류 여건이 달라 업계 전체를 대변할 표준 데이터 구축에도 어려움이 있었다. 이에 협회는 최근 회계법인을 통해 의료용 산소의 적정 원가가 10ℓ당 25원 수준임을 입증하는 등 데이터 중심의 논리적 설득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이는 현행 11원 대비 약 2.3배에 달하는 수치로, 우리 업계의 현실을 대변하는 명확한 근거가 된다.
협회는 이러한 한계를 돌파하기 위해 올해 3대 중점 사업을 확정했다. 우선 객관적 원가 분석 데이터를 기반으로 현실적인 약제 상한금액 조정을 지속 추진하는 한편, 기체산소 및 소형 고압용기 등을 신규 품목으로 등재하여 보상 체계를 세분화할 계획이다. 나아가 해외 사례를 참조해 운송비와 렌탈비를 분리 청구하는 선진 계약 문화를 정착시켜 나가겠다. 단순히 이익을 대변하는 창구를 넘어, 정부가 우리를 ‘공중보건의 필수 파트너’로 인식하도록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데 역량을 집중하겠다.
수가 인상 및 실거래가 조정 제외 성과, 공급자 넘어 의약품 제조사 위상 재정립
물류·서비스 가치 분리 계약 문화 정착, 출혈 경쟁 지양·안전 재투자 선순환 구조 必
■규제 환경이 강화되면서 개별 기업의 부담이 커지고 있다. 이에 앞으로 협회의 역할은 어떻게 달라져야 한다고 보는가
이제 협회는 단순히 업계의 권익을 대변하는 이익단체를 넘어, 글로벌 표준을 제시하는 정책 선도자로 거듭나야 한다. 급변하는 규제 환경 속에서 개별 기업이 파편적으로 대응하기에는 행정적·기술적 비용이 이미 임계치를 넘어섰기 때문이다.
우선 GMP 데이터 완전성(Data Integrity, DI) 대응과 같이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사안에 대해 협회 차원의 표준 가이드라인을 수립·배포함으로써, 회원사의 시행착오를 최소화하고 업계 전반의 품질 기준을 상향 평준화할 계획이다. 또한 일본의 사례를 참조해 협회 주도의 엄격한 심사를 통해 공급 자격을 부여하고 유지하는 제도의 도입을 검토 중이다. 이를 통해 우리 산업의 전문성을 스스로 입증해 나갈 것이다.
또한 협회는 건전한 시장 생태계를 유지하는 ‘자율 정화의 구심점’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지난해 어렵게 확보한 ‘실거래가 상한금액 조정 제외’ 제도가 실효성을 거두려면, 무엇보다 기업 간의 소모적인 출혈 경쟁을 지양해야 한다. 실거래가가 비정상적으로 하락한다면 정부는 언제든 제도를 재검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협회는 자율적인 가격 질서 확립을 독려하는 한편, 소형 고압용기 신규 품목 지정 등을 추진해 기업들이 새로운 수익 구조를 창출할 수 있도록 도울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의료용 가스 제조사를 필수 공익 사업장으로 지정하기 위한 입법 활동을 지원해산업의 존립 기반을 공고히 하고자 한다. 규제에 수동적으로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규제의 방향을 선제적으로 제안하고, 회원사들이 오직 고품질 의약품 제조에만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협회가 지향해야 할 진정한 역할이다.
■업계가 준비해야 할 변화와 관계자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점은?
가장 먼저 직시해야 할 변화의 핵심은 ‘소모적인 가격 경쟁’에서 ‘안전과 가치 중심의 경쟁’으로의 전환이다. 최근 발생한 병원 내 불법 이·충전 사고는 안전과 품질을 타협했을 때 어떠한 치명적인 결과가 초래되는지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비용 절감을 이유로 기본을 저버리는 행위는 단순히 개별 기업의 과실을 넘어, 국민의 건강권과 업계 전체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위협이 된다는 점을 우리 모두가 명심해야 한다.
이를 위해 우리 업계가 나아가야 할 구체적인 지향점은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계약 문화의 선진화다. 이제는 가스 단가 속에 매몰돼 있던 물류와 서비스의 정당한 가치를 분리해내야 한다. 운송비, 용기 임대료, 유지보수비 등을 체계적으로 산정하고, 외부 환경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합리적인 계약 체계를 정착시켜야 한다. 이것이 단순한 수익성 개선을 넘어, 어떤 위기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안정적인 국가 의료망을 구축하기 위한 필수 조건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당부하고 싶은 것은 우리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이다. 우리는 단순한 가스 판매자가 아니라 생명을 유지하는 의약품을 만드는 제조인이다. 과당 경쟁의 늪에서 벗어나, 정당한 대가를 통해 확보된 재원을 안전과 품질에 재투자하는 선순환 구조를 함께 만들어가야 한다. 우리가 전 주기에 걸쳐 완결성 있는 책임을 다할 때, 국민 보건의 진정한 파수꾼으로 대우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 변화의 중심에서 협회가 여러분의 가장 든든한 버팀목이 되겠다.
▲ 한국의료용고압가스협회가 ‘2026년 정기총회’를 개최,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