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전기차·자율주행 분야에서 새로운 글로벌 표준을 형성하고 있는 가운데, 우리 기업이 중국과의 전략적 협력과 차별화 전략을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한국경제인협회(이하 한경협)는 FKI타워 컨퍼런스센터에서 제이캠퍼스와 함께 ‘중국발 산업혁신과 전기차 대전환’을 주제로 세미나를 개최했다고 8일 밝혔다.
김창범 한경협 상근부회장은 “중국은 신산업 분야에서 놀라운 속도로 앞서 나가며, 기존 완성차 업체들이 수십 년간 유지해온 질서를 불과 몇 년 만에 흔들고 있다”며, “속도의 차이가 시장 주도권과 산업생태계 우위를 갈라놓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 기업은 불과 1년 반 만에 신차를 내놓지만, 우리 완성차 업체는 여전히 3~4년이 소요되고 있다. 김 부회장은 “이는 단순히 생산효율의 문제가 아니라, 시장 선점과 생태계 구축의 문제”라며, “우리 기업은 기민한 의사결정과 유연한 조직문화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동 주최자인 정구현 제이캠퍼스 원장도 “중국의 산업생태계가 포드와 GM이 백 년간 지켜온 산업 프레임을 흔들고 있다”며, “우리기업은 현상유지에서 벗어나 대대적인 구조개혁과 사업혁신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노은영 성균관대 중국대학원 교수는 ‘중국의 혁신은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가’를 주제로 한 발제에서 “중국의 혁신은 정부가 시장을 설계하고, 민간이 구현하는 구조”라며, “중국정부는 규제와 허가를 하기 전에 기술의 사회적 효용성을 관찰하고, 방향성을 제시하며, 유예를 통해 실험을 허용한다”고 설명했다.
노 교수는 “한국 기업에게는 기술의 사회적·정책적 수용가능성을 판단하는 능력이, 한국 정부에게는 초기의 실험을 허용하고 사후적으로 규율하는 정책 설계 역량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예를 들어 중국 차량호출기업 ‘디디다처’, ‘콰이디다처’는 각각 베이징과 항저우에서 ’12년 처음 설립됐지만, 실제로 합법화된 것은 ’16년이다.
이후 중국의 차량호출 시장은 빠르게 생태계를 형성했고 플랫폼 사업자에게 운전자 관리, 보험, 사고대응 등의 책임 부과가 제도화되면서 급속하게 성장하게 됐다. 이 사례는 혁신 기술이 중국에서 선 실험 후 정책적 수용 과정을 거쳐 제도권에 안착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김창현 중국유럽국제경영대학원(CEIBS) 교수는 ‘생태계 구축을 통한 중국 전기차의 진화’를 주제로 한 발표를 통해 “중국은 기업 단위의 최적화를 넘어 산업 전체 차원의 최적화를 통해 중국 시장 밖에서도 강력한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화웨이와 CATL은 자율주행과 배터리 시스템 표준화를 주도하며, 기존 공급망과 차별화된 전기차 생태계를 만들어 가고 있다. 화웨이, CATL이 추진하는 모듈형(Modularity) 방식은 제품을 여러 개의 독립적인 모듈로 나눠서, 각 모듈을 표준화된 방식으로 결합하는 구조를 의미한다.
김 교수는 “한국 자동차와 배터리 업계가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자율주행 전기차의 새로운 표준과 레퍼런스가 형성되고 있는 중국 전기차 생태계와의 협업과 참여가 필수적”이라고 제언했다. 이러한 주장은 향후 한국기업들이 중국시장이나 글로벌 전기차·인공지능 생태계에서 대응할 때, 모듈형(개방형) 생태계에 참여할지, 자체 수직계열화(폐쇄형)를 강화할지에 대한 전략적 선택이 중요해지는 가운데 나왔다는 설명이다.
이어진 패널토론에서는 △양진수 HMG경영연구원 모빌리티산업실장 △조철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문용권 신영증권 연구위원 △류성원 한경협 산업혁신팀장 등 다양한 패널들이 나섰다.
양진수 HMG경영연구원 실장은 “중국시장에서 화웨이·CATL과 BYD 등 기존 완성차가 경쟁하면서 ‘전동화·SDV·자율주행’에서 혁신속도(China Speed)가 더욱 빨라지고 있다”며, “이로 인해 중국업체와 글로벌 완성차간 협력이 확대되는 추세”라고 말했다. 또한 “과거 중국은 판매와 이익의 원천이었지만, 이제는 기술 습득과 학습의 장으로 변모하고 있다”며, “리스크를 관리하면서도 중국을 활용하는 스마트한 협력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조철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화웨이式 개방형 생태계 협력 모델이 글로벌 완성차 업계에 확산되고 있다”고 밝혔다. 화웨이는 △AITO △LUXEED △STELATO △MAESTRO 등 4가지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는데, 이들은 각각 △세레스 △치루이 △베이치 △쟝화이 등의 다른 완성차 업체에서 생산을 담당한다.
문용권 신영증권 연구위원은 “중국업체들은 하루 2교대, 주 6일 근무체제로 R&D를 집중하며 빠른 속도로 기술력을 높이고 있다”며, “중국 내 경쟁에서 살아남는 기업들은 제2의 GM, 폭스바겐으로 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한 “중국업체들이 해외시장에서 타겟으로 하는 브랜드가 가성비를 통해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한 현대·기아이기 때문에 우리 기업은 차별화된 브랜드 전략과 기술 경쟁력 확보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신흥시장에서 중국 전기차 진출 속도가 매우 빠르며, 불과 1~2년 만에 점유율을 10% 이상으로 끌어올리고 있다”고 경고했다.
류성원 한경협 산업혁신팀장은 “중국은 오랜기간 과학기술 정책을 일관성있게 추진해 ‘제조2025’의 핵심기술 10대 분야 목표를 대부분 달성했고, 이제 새로운 10년 계획인 ‘중국표준2035’ 계획을 추진한다”며, “우리도 과학기술, 혁신 등 이념과 상관없는 경제정책을 추진할 때 일관성 유지와 정책 신뢰도 유지가 수반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신산업분야에서 발생하는 갈등과 관련해 “중국이 택시업계와 플랫폼과의 갈등 조정에 성공한 것처럼 갈등 당사자들이 상호 수용가능한 방안을 도출할 수 있는 의사결정 구조를 만들고 성공사례를 도출·정착시킬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