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륨(Ga)은 반도체, LED, 태양전지, 통신, 광전소자 등 첨단 산업에 필수적인 금속이나 우리나라는 대부분을 중국에 의존하고 있다. 최근 중국의 수출 규제 강화로 공급망 불안이 커지자, 미국·EU·일본은 중국 외 지역에서 확보와 비축을 서두르고 있다. 여기에 가격 급락과 중국 내 감산 조짐이 맞물리면서 글로벌 공급망은 더 복잡해지고, 각국의 공급 다변화 경쟁은 한층 치열해지고 있다. 이에 우리나라도 신속하고 중장기적인 대응책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다.
갈륨은 지각 내 함유량이 약 0.0015%에 불과해 자연 상태에서는 거의 순수한 형태로 존재하지 않는다. 주로 보크사이트(알루미늄 원광석)나 아연광석을 정제하는 과정에서 부산물로 소량만 회수되기 때문에, 갈륨은 대표적인 전략적 희소금속으로 분류된다.
갈륨 금속 자체가 최종 제품에 직접 투입되는 비중은 크지 않다. 그러나 고순도 금속갈륨은 반도체와 LED 제조 공정에서 에피택셜 성장(epitaxy)용 전구체로 필수적이며, 웨이퍼 기반 고주파·고출력 소자와 고효율 광전소자 생산에 기초 재료로도 널리 활용된다.
갈륨은 질소, 비소, 인, 셀레늄, 텔루륨, 안티몬 등과 결합해 다양한 갈륨계 화합물을 형성한다. 이러한 화합물들은 뛰어난 전기적·광학적 특성을 지녀 주요 화합물 반도체 소재로 쓰인다. 대표적으로 질화갈륨(GaN), 비소화갈륨(GaAs), 인화갈륨(GaP) 등이 있다.
질화갈륨은 고전력·고주파 집적회로(IC), 고휘도 LED, 레이저, 무선통신 장비, 전력전자 시스템 등에 광범위하게 적용된다. 특히 고내열성과 고내전압 특성 덕분에 차세대 전력 변환 장치와 RF 응용 분야에서 빠르게 시장을 넓혀가고 있다.
비소화갈륨은 우수한 전자 이동도를 바탕으로 고속 통신용 칩, RF 전력 증폭기, 적외선 센서, 고효율 태양전지, 레이저 다이오드 등 광전자 및 통신 분야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산화갈륨은 매우 넓은 밴드갭과 높은 임계 전계 강도를 갖춰 기존 실리콘 기반 소재보다 고전압 환경에서 안정적인 성능을 기대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차세대 차량용 및 고전력 반도체 소재로 주목받고 있다.
미국 지질조사국(USGS)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전 세계 금속갈륨 확인 매장량은 약 27만9,300톤으로 추정되며, 이 중 중국이 약 68%를 보유하고 있다. 생산량도 중국이 전 세계의 95% 이상을 차지하며, 특히 저순도 갈륨은 중국 점유율이 98%에 달한다.
반면, 반도체 및 첨단 기술용으로 사용되는 고순도 갈륨은 주로 미국, 독일, 일본 기업에서 생산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갈륨 생산은 함량이 극히 낮고, 정제와 고순도화 과정이 복잡하며 기술적 난이도도 높아 매우 어려운 작업으로 꼽힌다.
18일 KOTRA 광저우무역관에서 발표한 ‘중국 갈륨(Ga) 글로벌 공급망 동향’에 따르면, 2025년 상반기 중국 내 금속갈륨 가격은 하락세를 보였다. 1월 초 약 2,000위안/kg에서 출발했으나, 3월 투기성 자금 유입으로 일시 2,250~2,300위안/kg까지 올랐다. 이후 투자자 이탈과 수요 부진으로 가격은 다시 떨어져 6월에는 1,725위안/kg까지 내렸다. 올해 상반기 평균가는 전년동기대비 20% 이상 낮은 1,798위안/kg 수준을 기록했다.
가격 하락의 주된 원인은 공급 과잉이다. 2024년 신규 설비 가동과 높은 가동률로 생산이 늘어난 반면, 자석 소재, 반도체, 광전자소자 산업의 경기 둔화와 중국의 수출 제한 조치로 수요는 줄었다. 특히 중희토류 수출 통제 영향으로 자석 산업 해외 주문이 감소하면서 갈륨 소비가 크게 위축됐다. 일부 기업은 생산량을 줄였지만, 공급 불균형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중국은 세계 최대 금속갈륨 생산국이자 수출국으로, 주요 수출 대상은 홍콩, 한국, 네덜란드, 영국, 말레이시아 등이다. 최근 3년간 수출 규모는 꾸준히 늘어 2024년에 약 39만 톤, 1억7,630만 달러의 수출액을 기록했다.
하지만 2023년 8월부터 시행된 ‘갈륨·게르마늄 관련 물품 수출관리통제공고’에 따라 금속갈륨과 질화갈륨, 비소화갈륨 등 주요 화합물이 모두 수출허가제 적용을 받게 되면서 글로벌 공급망 불확실성이 확대됐다.
한국의 상황은 특히 취약하다. 2024년 기준 한국의 금속갈륨 수입액 약 42만2천 달러 중 약 92.7%가 중국산 이었다. 2022년 84.6%였던 중국산 비중은 3년 만에 크게 증가했다. 2025년 상반기에도 중국 의존도는 약 91%로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했다. 특정 국가 편중이 심화된 상황에서 중국의 수출허가제 강화와 미국 등 주요국의 전략물자 관리 강화 움직임이 겹치면서, 중장기 수급 안정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여기에 중국 내에서는가격 하락 여파로 일부 중소 정제업체가 감산에 나서는 조짐도 나타났다. 이에글로벌 소재·반도체 기업들은 장기 공급 계약을 통해 물량을 선점하고, 중국 외 공급선 확보와 재활용 기반 확대 등 다각적인 대응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유럽연합(EU)도 ‘핵심원자재법(CRMA)’을 통해 갈륨을 포함한 전략 자원 프로젝트에 대한 제도적 지원을 늘리는 중이다.
핵심원자재법(CRMA)은 EU가 희토류·갈륨 등 전략 자원의 채굴·정제·재활용을 유럽 내에서 일정 비율 확보하도록 규정한 법률로, 공급 다변화, 승인 절차 간소화, 민간 투자 유도 등을 통해 EU의 전략자원 자급률을 높이는 것이 핵심 목표다.
국내 산업계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중국 의존도를 단계적으로 낮추고 중장기적으로 안정적 공급망 구축에 나서야 한다. 특히 2023년부터 시행된 중국 수출허가제에 원활히 대응할 수 있는 행정 경험과 통관 역량을 갖춘 현지 파트너와의 협력이 필수다. 동시에 제3국 공급선 발굴, 국내외 재자원화 기술 협력, 공공·민간 비축 연계 전략 등을 통해 수급 리스크를 체계적으로 분산해야 한다.
갈륨은 반도체와 광전자 산업의 핵심 소재다. IT, 통신, 전자기기, 에너지 등 다양한 분야에서 쓰이며, 고속 컴퓨팅, 데이터 처리, 광통신, 레이저 가공 같은 첨단 기술 발전을 뒷받침한다. 하지만 공급망 불안이 커지는 지금, 갈륨 확보는 더 이상 선택이 아니라 산업 경쟁력과 기술 주권을 지키기 위한 필수 과제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