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데이터센터로 인해 반도체가 수요가 향후 5년 급증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우리나라가 반도체 패권을 확보하기 위해선 정책 지원을 통해 적기 공급 역량을 확충해야 한다는 보고서가 발표됐다.
산업연구원이 9일 발표한 ‘반도체 글로벌 지형 변화 전망과 정책 시사점(부제: 반도체 전쟁, 5년의 승부)’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AI·데이터센터 반도체 수요 급증에 따른 기회를 잡아야만 HBM 등 첨단 메모리 경쟁우위 수성과 파운드리 입지 확보가 가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보고서는 향후 5년(’26~’30) 데이터센터 向 반도체 시장 규모가 도합 700조원에서 3,000조원까지 폭발적으로 성장할 것이라는 여러 기관들의 전망치를 제시했다. TSMC 5/4nm 매출액과 웨이퍼 단가 추정치로 계산해볼 때, 현재 빅테크·팹리스 주요 고객사 물량 공급이 어려운 상황일 수 있다는 분석이다.
경희권 연구위원은 초과수요 국면 진입 가능성에 대해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장기간 빅파마 발주 가뭄 상황을 버티다 COVID-19 사태 당시 백신 품귀로 일약 동북아의 핵심 공급 파트너로 부상한 것처럼, 오랜 시간 수주의 구조적 불리함 속에 고군분투해 왔던 우리 반도체 위탁개발생산(파운드리)에 짧지만 강력한 기회의 창이 열린 상황일 수 있다”고 말했다.
보고서는 레거시 메모리·파운드리 분야에서 중국의 추격이 과거 우리 디스플레이 산업 붕괴 당시와 마찬가지로 이미 한국 반도체 산업에 대한 전면적이며 실존적인 위협이라 평가했다. 낸드(NAND) 글로벌 5강 과점 체제는 이미 붕괴돼, ’21년 세계 시장 점유율 2.7%에 불과했던 양쯔메모리(YMTC)의 ’24년 점유율은 9%에 육박했다. 전년대비 매출액 증가율은 160%로, 이대로라면 美 마이크론과 웨스턴디지털의 4-5위 자리도 넘볼 수 있는 실적이다.
이준 선임연구위원은 “2022-2024년 기간 중국 집성전로기금 등 정부 지원에 힘입어 국적 파운드리 기업 SMIC의 매출 대비 시설투자액 비율은 98%를 기록했다”며, “과거 미국·일본·대만과 우리 경험을 바탕으로 중국 메모리·파운드리 기업들의 추격 속도를 상정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라 설명했다.
이는 상식을 뛰어넘는 비용 구조와 자원 투입으로 기술격차 축소 기간은 물론 시장 내 물량 투입 사이클이 과거 주요국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빨라질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이 선임연구위원은 “선제적 대규모 시설 투자와 이익회수 후 재투자라는 우리 성공방정식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을 시간이 올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미국은 반도체지원법(CHIPS Act)에 더해 또 하나의 칼을 뽑아들었는데 ‘하나의 크고 아름다운 법’ 즉, 트럼프 감세법이다. 해당 법안은 7월 4일 최종 통과돼, 이제 한 해 연구개발비를 20조원 이상 지출하는 인텔 등 기업들에 국내·적격 R&D 지출 100% 즉시 비용 처리(Immediate Expensing)가 영구화된다. 뿐만 아니라 시설투자(장비·기계·SW 등) 비용 100% 당해 과세연도 즉시 비용 처리 역시 영구화된다. 5년 기간 한정은 있지만 신규 제조 시설 건물·공장 투자액까지 100% 비용 처리된다.
경희권 연구위원은 OBBBA가 7월 4일 통과돼 인텔과 마이크론의 비용 구조가 급진적으로 개선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그는 “연구개발비 100% 즉시 비용처리는 1기 트럼프 행정부 시기에는 5년 한정 혜택이었으나, 하원에서 최종 표결된 상원 금융위 案은 향후 영구화 뿐만 아니라 5년 분할 상각(Amortization) 대상이었던 ’22-’24년 기간 대상 연구개발 지출 전액에 대한 1-2년 내 소급 비용처리(가속 상각)까지 포함한다”며, “인텔의 ’22-’24년 기간 연구개발 지출 총액은 거의 700억달러(96조원)로, CHIPS Act 투자세액공제와 직접보조금 외에 거액의 별도 세액공제 수혜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김상훈 선임연구위원은 “반도체 산업의 글로벌 지형 재편은 기술·수요·지정학 등 많은 요소가 작동해 쉽게 진단이나 전망을 내기 어렵다”며, “그러나 메모리·파운드리 양산 부문에 한정해 볼 때, 현 시점은 분명 구조적 재편 흐름이 드러나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준 경영부원장은 “인공지능 반도체 수요의 급증은 고대역폭메모리(HBM)를 중심으로 한 우리 메모리 초격차 굳히기는 물론, 가격과 납기를 생명선으로 오늘의 입지를 구축한 선단공정 내 TSMC 독점 구도에 균열이 발생해, 파운드리 입지 확보가 가능한 다시 오기 어려운 진입 기회가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경희권 연구위원은 “초과 수요로 인한 기회의 창은 길지 않다”며, “적기 공급 역량 확충을 위한 반도체특별법 합의안 도출과 통과, 토지·전력·용수 등 인프라 적시 공급 체계 확립이 매우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이준 선임연구위원은 “국가기간전력망확충특별법을 적극 활용하고, 신정부의 AI 정책자금 등을 인공지능 반도체와 양산 주력 기업에 조달 정책 형태로 투입하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다”며, “우리 정부와 기업, 수많은 이해관계자들의 중지(衆志)를 모아 다시금 도약의 시대를 열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