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소, 질소, 수소, 특수가스 등 산업가스 공급에 필요한 고압용기를 사용하는 산업가스 업계의 오랜 숙원인 용기 재검사 주기 연장이 해가 넘어도 지지부진한 상태다. 업계는 선진국의 재검사 주기와 재검사 불합격률 등 객관적인 자료와 기술 자료를 근거로 국내 산업가스 경쟁력 강화를 위해 조속한 검토와 개정이 이뤄져야 한다고 촉구하고 나섰다.
국내 산업가스 업계를 대변하는 한국고압가스공업협동조합연합회, 고압가스제조충전안전협회, 한국산업특수가스협회 등은 올해도 월례회의와 정기총회를 통해 이음매 없는 용기 또는 복합재료용기(이하 고압용기)의 재검사 주기 연장이 조속히 개정돼야 한다는 입장을 거듭 밝히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 ‘고압가스 안전관리법 시행규칙’에 따라 산소, 질소, 수소 등 압력이 높은 압축가스를 저장하는 이음매 없는 용기 재검사 기간은 500L 이상은 5년 마다, 500L 미만은 신규검사 후 경과연수가 10년 이하인 것은 5년마다, 10년을 초과한 것은 3년마다로 규정돼 있다.
산업가스 업계는 지난 10여년 전부터 10년이 초과된 500L 미만 용기에 대한 재검사 주기를 3년마다에서 5년마다로 연장할 것을 일관되게 건의해 왔다. 업계는 해외 사례나 국내 통계를 근거로 5년으로 연장해도 용기의 안정성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미국, 유럽, 일본 등 선진국에서도 용기의 재검사주기는 대부분 5년 이상이다. 일본의 경우 1998년을 기점으로 이후에 만든 용기는 5년마다 재검사 하도록 하고 있으며, 미국은 5년, 유럽은 10년(독성·부식성 가스용기는 5년) 등이다.
또한 국내에서도 10년 이상된 이음매 없는 용기의 최초 3년과 이후 3년의 재검사 불합격률은 1% 미만으로 나타나 품질보장에 큰 문제가 없는 것이 통계적으로도 증명되고 있다.
이에 산업가스 업계는 과거와 달리 우리나라를 포함해 선진국 등에서 국제 표준을 통해 고압용기를 제조하고 있는데 우리나라 고압용기 재검사 주기만 3년을 고집하고 있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특히 정부는 액화석유가스(LPG) 유통비용 절감을 위해 지난 2010년 고압가스안전관리법 시행규칙 개정을 통해 2년마다 검사했던 15년 미만 LPG 용기 재검사 주기를 20년 미만 5년으로 연장해 완화했지만 고압용기 재검사 주기는 1998년 이래 바뀌지 않았다. 산업가스 업계는 형평성에도 어긋나고 30여년간 용기 제조기술이 발전해 품질이 제고된 것과 유통 구조가 선진화된 것이 전혀 반영되지 않아 불만이다.
또한 용기 재검사 주기의 연장은 수출량이 많은 특수가스의 수출 경쟁력 향상과도 직결된다. 대부분 5년 이상인 글로벌 재검사 주기와 일치하지 않다보니 추가적으로 용기 재검사 비용 및 밸브 교체 비용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특수가스 용기는 여러 나라로 유통되기 때문에 안전과 비용을 고려해서라도 글로벌 기준에 맞추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가스안전공사에서는 우리나라 고압가스 공급 현장 등 산업 환경이 해외와 서로 다를 수 있으며, 고압가스 용기 재검사 주기 연장을 반대하는 전문검사기관, 용기 제조사 등의 이해관계도 고려해야하기 때문에 안전을 최우선으로 두고 검토하겠다는 원론적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지난 2024년 12월13일에 개최된 ‘2024년 고압가스 안전협의회’를 통해 심승일 한국고압가스제조충전안전협회 및 지역조합이사장 등이 산업부와 가스안전공사 담당자와 만나 용기 재검사 연장을 적극 건의했으나 추후 다시 논의하기로 하고 했다.
가스안전공사는 가스용기 및 특정설비에 대한 전문적인 검사를 담당하고 있는 한국가스전문검사기관협회와 산업가스 업계가 합의점을 찾아오면 개정을 검토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양측의 입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어 개정이 언제 될지 요원한 상태다. 가스전문검사기관협회는 국내 일반가스 용기의 사용 환경이 아직도 좋지 못하고 용기 관리도 나쁜 상황이어서 재검사 주기 연장은 시기상조라는 입장이다.
이처럼 재검사 연장 논의가 지지부진해지면서 가뜩이나 경기침체로 경영실적이 급감하고 있는 산업가스 업계의 고충은 더욱 커지고 있다. 재검사 주기가 짧다보니 용기 재검사 시 필요한 검사비용, 전처리, 밸브교체 등 제반 비용이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또한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인한 밸브 가격 인상,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등에 따른 안전관리 비용 증대 등 지출은 날로 늘어나는데 수요 둔화로 가격 인상도 힘들어 사업이 지속되려면 용기 재검사 연장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가스안전공사가 2024년 발간한 ‘2023년 가스통계’에 따르면 한해 일반고압가스 이음매 없는 용기 재검사 개수는 56만여개에 이른다.
법이나 규칙이 바뀔 때는 각자 이해관계가 있기 때문에 항상 찬성과 반대가 있고 의견 충돌이 없을 수는 없다. 산업가스 업계는 국내 가스안전 관리와 가스산업 발전을 책임지고 있는 한국가스안전공사가 이해관계자를 핑계로 수수방관하지 말고 중립적으로 객관적인 자료와 기술 검토를 통해 독자적으로 재검사 주기 연장 여부를 신속히 결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 한국고압가스제조충전안전협회 지역조합 이사장은 “재검사 기간을 설정한 이유가 산업가스의 안전한 사용에 있기 때문에 이해관계자들의 유불리를 따지지 말고 국내 고압용기 사용 환경과 품질 및 용기관리가 과거와 어떻게 달라졌고 해외 대비 어떤 차이가 있는지 객관적인 자료를 근거로 합리적으로 검토하면 된다”며 “객관적인 자료 확보를 위해서라면 연구용역도 진행하겠다는 입장인데 이렇게 시간만 보내고 대안도 제시하지 않는다면 경영상황이 더욱 열악해져 안전관리에 대한 투자가 둔화돼 법의 취지와 반대로 안전한 가스 공급에 차질이 생길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