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석유화학산업에서 지금까지 산업을 주도해 온 유럽, 미국, 일본 등은 완연한 성숙기에 접어든 반면, 중국, 중동 등 신흥국의 세력이 눈에 띄게 강해지고 있다. 특히 강력한 원가 경쟁력에 기반한 중동 기업들의 생산능력 확대는 전 세계적인 관심이다.
기타 지역의 1/10 수준에 불과한 중동의 에탄 가스 등 원료 가격을 바탕으로 중동은 기초 석유화학 제품 부문에서 놀라운 양적 성장을 보였다. 중동 지역의 에틸렌 생산 능력은 2000년 전세계 생산 능력의 6%에서 2009년 15% 수준으로 빠르게 확대됐으며, 2015년경에는 약 20%에 달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또한 전세계 석유화학 제품 수출 시장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어 교역시장 내 중동의 영향력 강화는 기존의 메이저 플레이어들에게 상당한 위협요인이 되고 있다. 가장 직접적인 타격을 입고 있는 유럽의 경우, 석유화학 수출 시장에서의 지위가 크게 약화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중동 석유화학 기업들은 단기간 내에 자국 내 생산 능력 확대에 필요한 기술을 확보하고자 선진 기업들과의 합작을 적극적으로 활용했으나, 기본적으로는 유기적 성장(Organic Growth)전략을 고수해왔다. 사우디 아라비아의 Yanpet, PetroKemya, Jubail United Petrochemicals, 및 카타르의 Q-Chem, 쿠웨이트의 Equate 등이 모두 이러한 성장 모델 하에서 추진된 프로젝트들이다. 제품 측면에서는 저가 에탄원료로부터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PE 등 에틸렌 유도품 위주의 제품 포트폴리오를 구축했다.
현재까지도 카타르, 아랍에미리트 등의 중동 국가들은 프로필렌 유도품인 PP 생산 시설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 저가 에탄 가스에 기반한 파괴적인 원가 경쟁력은 차별적인 제품력이나 고도의 마케팅 역량 없이도 그 자체로 전세계 모든 시장에서 수출 경쟁력을 확보해주었으며 중동 석유화학 기업들은 30%를 상회하는 높은 수익률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저가 원료의 확보가 더 이상 용이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신흥 개도국의 수요 급증으로 석유 자원의 고갈 가능성이 제기되고, 화석 연료 사용을 억제하는 환경 규제가 강화되면서 중동 국가들이 석유화학 산업의 육성방식 전환을 고민하게 됐다.
특히 원료로 사용되던 수반 가스(Associated gas, 원유와 함께 매장되어 있는 가스로 순수 천연가스전의 비수반 가스대비 에탄 함량이 3배 가량 높다)가 부족해짐에 따라 중동석유화학 신증설 설비 가동은 발목을 잡혔다. 이러한 가스 부족난은 OPEC이 2008년 9월 이후 유가를 배럴당 70~80달러 수준으로 유지하기 위해 원유 감산 조치를 취해왔기 때문이다.
사우디 아라비아의 가스는 총 매장량 가운데 57%가 수반 가스 형태로 매장돼 있어 원유 생산 감소는 가스 생산 감소로 이어졌다. 2008년에서 2010년 사이 에틸렌 생산 설비는 500만 톤 이상 증가한 반면, 원유 생산 감소에 따라 가스 공급은 오히려 감소한 것이다.
또한 중동 국가들에서는 발전용 연료에 있어서 가스가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높아 전력 수요 급증에 따른 가스 사용량도 급증하고 있다. 여기에 중동 산유국들의 유전 노후화에 따라 원유생산을 위한 수반 가스 재주입(Re-injection) 필요량 증가도 중동 석유화학 산업의 원료 부족난을 가중시키는 요인으로 작용될 전망이다.
실제로 아부다비는 하루 평균 가스 생산량가운데 약 35%를 유전에 재주입하는데 사용하고 있다. 아부다비 국영 가스 기업 Adgas의 이사 하메드 알-마주키(Hamed al-Marzouqi)는 유전의 압력을 높여 생산률을 끌어올리기 위해 재주입되는 가스 필요량이 2020년까지 연 평균 8%씩 상승할 것이라 분석하기도 했다.
이렇듯 중동 석유화학 산업은 파괴적 경쟁력에 기반한 자국 내 생산능력의 추가적 확대에 있어 한계를 맞이하고 있다. 그러나 중동국가들이 경제 성장을 위해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무기는 석유자원이 유일하다. 석유화학 산업은 석유자원을 고도로 활용할 수 있는 최적의 산업으로, 중동국가들의 향후 경제 성장 노력에 있어서 그 역할이 보다 중요해질 전망이다.
이에 중동 석유화학 산업은 성장 모델전환을 통해 점차 납사, LPG 등 다양한 원료를 활용해 고부가가치 다운스트림 영역으로의 사업 도메인 확장을 도모하고 있다. 그러나, 새로운 성장 모델 하에서 중동 석유화학 산업의 경쟁력은 더 이상 과거 저렴한 에탄가스 가격에서 확보하던 수준에 크게 못 미칠 전망이다.
이에 따라 중동 기업들은 기능성 석유화학 제품 사업에서의 핵심 성공 요인인 R&D, 마케팅 역량 및 현지고객 기반 확보를 위해 더욱 적극적으로 현지진출 및 해외 자산 인수에 힘을 쏟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현지 사업 인수를 통한 비유기적 성장(Inorganic Growth)은 중동국가들이 기대하는 수준의 빠른 양적, 질적 성장을 가능케 해 줄 수 있는 전략적 수단으로 적극 활용될 전망이다.
세계 경기 침체 속에서도 잇따르고 있는 중동 기업들의 해외 직접 투자 소식은 중동석유화학 산업이 새로운 성장 모델로 전환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석유화학 산업을 적극적으로 육성하고 있는 사우디 아라비아, 아부다비, 카타르 등 3개국의 사례를 집중적으로 살펴본다.
△사우디 아라비아
사우디 아라비아의 석유화학 산업은 제 8차 경제 개발 기간(2005~2009) 동안 사우디 정부가 설정한 석유화학 부문의 연평균 7.3%의 부가가치 성장률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여타 중동 국가들 대비 일찍 성장 모델의 전환을 시도해왔다. 자국내 생산능력 확대와 더불어 일찌감치 해외 시장 직접 투자에 발벗고 나선 결과, 고도의 마케팅 역량을 확보하고 고부가가치의 기능성 제품군으로 사업 도메인을 확대하는데 성공했다.
사우디 아라비아의 對유럽 에틸렌 유도품 수출 통계를 살펴보면, 빠르게 증가하던 시장 점유율이 2004년 이후 120만 톤 수준에서 횡보를 거듭하고 있으나 DSM, Huntsman 등 유럽 현지의 인수 자산을 통해 생산 및 판매하고 있는 약 300만 톤에 달하는 석유화학 제품을 고려할 경우, 사우디 아라비아의 유럽 시장에 대한 영향력은 막대하다고 할 수 있다.
나아가 2007년 GE Plastics 인수를 통해 범용 일변도의 제품 포트폴리오를 보다 고부가가치의 기능성 제품 군으로 확대하기 위한 발판을 마련함과 동시에 명실상부한 글로벌 메이저 플레이어로 도약했다.
SABIC과 아람코는 글로벌 플레이어로서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세계 최대의 시장, 중국에서 마치 하나의 가상 기업과 같이 전략적으로 협업하고 있다. 아람코는 Sinopec 등과의 합작을 통해 Fujian 정유-석유화학 콤플렉스에서 생산하는 석유학 제품의 판매 및 마케팅을 SABIC의 중국 현지 판매 법인 SABIC Shenzhen Trading이 담당토록 하고 있다.
2008년 마케팅 협정을 체결하는 자리에서 SABIC의 부회장이자 CEO 모하메드 알-마디 또한 사우디 산업 발전의 가속화와 GDP 성장 극대화에 최대한 기여할 수 있도록 아람코와 마케팅, 기술 등 사업 전반에 걸쳐 전략적 협력 관계를 강화해 나갈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아부다비
아부다비는 ‘경제 비전 2030’을 달성하기 위한 마스터플랜에서 원유 정제 부문과 석유화학을 중심 축에 두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자국 내 사업을 플랫폼으로 하여 아부다비의 영향력을 글로벌 영역으로까지 확대하고자 자국 내 석유화학 생산능력 확대와 더불어 국부펀드 IPIC를 통한 아시아, 북아프리카, 유럽 등지에의 직접 투자 확대 계획을 강조하고 있다.
해외 탄화수소 시장에 투자하는 것을 목적으로 1984년 설립된 IPIC는 아부다비의 석유 및 석유화학 사업에 있어서 합작업무를 원활화 하는데 기여할 뿐 아니라, IPIC의 포트폴리오에 포함된 기업들의 기술과 사업 노하우, 네트워크 등을 통해 아부다비의 석유화학 산업 발전에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이미 1997년 유럽 석유화학기업 Borealis의 인수를 통해 확보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자국내 Borouge 설립을 성공적으로 이끈 바 있는 IPIC는 아부다비의 경제 비전 수립에 따라 최근 더욱 두드러진 활약상을 보여주고 있다.
첫번째 성과는 지금까지 중동 석유화학 산업의 최대 취약점 중 하나로 꼽혀왔던 엔지니어링 기술의 확보이다. 지난해 1월 독일의 엔지니어링 기업 만페로스탈(MAN Ferrostaal)을 인수함으로써 중앙아시아 등지에서 검토하고 있는 석유화학 프로젝트를 비롯해 자국내 정유연계 석유화학 프로젝트 등에 만페로스탈의 엔지니어링 기술을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 나아가 캐나다의 노바 케미컬즈(Nova Chemicals)를 인수함으로써 북미 시장 유통망을 확보했다.
IPIC의 이사 카뎀 알 쿠바이시(Khadem al-Qubaisi)는 노바케미컬즈가 IPIC의 석유화학 부문 장기 성장 전략에 잘 들어맞으며, 선진 시장에 대한 마케팅 역량과 세계 수준의 테크놀로지를 제공하고 상품 범위를 넓혀줌으로써 IPIC의 기존 석유화학 포트폴리오에 시너지를 창출해 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IPIC의 활약은 올해에도 계속될 전망이다. 약 150년 전통의 글로벌 화학기업 Bayer의 일부 자산 인수 내지는 합작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아부다비는 현재 납사 원료 기반 초대형 석유화학 프로젝트 Chemaweyaat을 추진하고 있으며, 제품 다각화를 위해 특히 벤젠 및 페놀 체인의 강화를 검토 하고 있다.
이에 벤젠 기반 기능성 석유화학 제품인 폴리우레탄과, 페놀 기반 엔지니어링 플라스틱인 폴리카보네이트에 있어서 세계 최고의 지위를 확보하고 있는 Bayer의 MaterialScience 부문은 아부다비가 바라는 제품 기술력 및 글로벌 고객 기반 등을 한꺼번에 제공해줄 수 있는 매력적인 자산이 아닐 수 없다.
△카타르
카타르의 적극적인 아시아 시장 직접 투자 움직임도 두드러진다. 2008년 사업보고서에서 QP는 QPI(Qatar Petroleum International)를 통해 향후 전세계 에너지 및 석유화학 프로젝트 대한 전략적 투자를 강화해 나갈 것임을 천명했다.
QP회장 압둘라 빈 하마드 알-아티아(Abudllah Bin Hamad Al-Attiyah)는 ‘2008년은 ‘카타르국가 비전 2030’이 발표된 뜻 깊은 해로서, QP는 카타르의 경제 비전 달성에 있어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중국에서의 정유 연계 석유화학 콤플렉스 및 싱가포르 석유화학 생산 설비 투자 등을 검토 하고 있다’고 덧붙인 바 있다.
QPI는 자국의 풍부한 LPG 원료를 레버리지하여 최근 페트로차이나(CNPC) 및 중국해양석유총공사(CNOOC) 등 중국 메이저 기업들과의 대규모 석유화학 프로젝트 추진에 합의하고 중국 당국으로부터 사업 허가를 받은 상태이다.
QPI가 페트로베트남 등과의 합작을 통해 베트남에 건설 예정인 40억 달러 규모의 석유화학 콤플렉스에서도 카타르의 LPG가 원료로 사용될 예정이다.
아시아 생산 능력 확대와 더불어 물류 허브 확보에도 성과를 나타내고 있다. QPI는 2009년 쉘과의 합작을 통해 기존 PCS(Petrochemical Corporation of Singapore)와 TPC(The Polyolefin Company Singapore)에 대해 쉘이 보유하고 있던 지분의 절반을 확보했다. 쉘과 스미토모가 합작을 통해 운영해온 PCS와 TPC의 경우, 강력한 수직통합 및 물류에 유리한 지리적 조건 등으로 아시아 석유화학 설비중 경쟁력이 높은 자산으로 손꼽히고 있다.
싱가포르 거점 확보는 카타르가 자국 내에서 생산된 석유화학 제품을 아시아 시장에 수출 하는데 있어서도 시너지를 창출해 줄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전망
중동 기업들은 유럽 및 북미 등의 선진 시장 직접 투자를 통해 수출형 성장 모델 하에서 가장 취약했던 브랜드 파워, 현지 시장 노하우, 고급 인력 등 소프트 자산 확보에 비약적 성과를 거두고 있다.
중동 석유화학 산업은 자국내 생산 능력 확대와 적극적인 해외 직접 투자의 두 가지 성장 축을 동시에 활용함으로써 진정한 글로벌 플레이어로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회계 및 금융 자문 기업 KPMG는 최근 화학 산업 리포트에서 중동 현지에서의 생산 능력 확대는 중동 화학기업들의 성장 전략 중 한가지일 뿐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KPMG는 중동 기업들이 사업 영역을 확대하고 제품과 고객군을 다양화하기 위해 글로벌 수준에서의 인수합병을 전략적 도구로 활용함으로써 2015년경에는 세계 석유화학 산업의 주도권을 장악하게 될 것으로 전망했다.
중동 석유화학 산업의 성장 모델 전환이 우리 기업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단기적으로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중동 현지의 수출용 신증설 물량이 가스부족 문제로 차질을 빚음에 따라 수출 비중이 높은 국내 기업들의 반사 이익이 예상되기도 한다.
그러나, 중동 국가들이 막대한 오일 머니를 기반으로 서구 선진 기업들의 자산을 지속적으로 확보해 나갈 경우, 장기적으로 중동의 영향력은 과거 단순히 수출 시장에 대한 위협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막강해질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서구 선진기업들은 중장기적으로 수익성 악화가 예상되는 부문에 대해 과감한 포트폴리오 조정을 추진하는 한편, 새로운 성장 엔진 발굴에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우리 기업들 또한 장기적으로 세계 석유화학 산업의 구조적 변화의 흐름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수출 확대를 통해 성장해온 국내 석유화학 기업들은 범용제품 위주의 양적 성장 방식이 과연 장기적으로도 유효할 것인지에 대해 재고해 보아야 할 것이다.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서는 과거의 성장 모델에 안주하지 말고 지금부터 적극적으로 대응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다른 곳에 퍼가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해주세요.
http://amenews.kr/news/view.php?idx=28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