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업 자동화 관련 피지컬 AI 세계시장 전망제조업의 인공지능 전환(AX)이 공장 내 고정설비를 넘어 휴머노이드 등 피지컬 AI 로봇 중심으로 확장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특히 제조 현장은 서비스 분야보다 피지컬 AI의 현장 적용과 검증이 상대적으로 용이한 만큼, 광범위한 제조 인프라를 보유한 우리나라가 제조 특화 행동 학습을 기반으로 피지컬 AI 생태계의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산업연구원(KIET)이 지난 15일 발표한 ‘제조 AX를 위한 피지컬 AI 생태계 발전 전략’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제조 AX가 생산관리시스템 등 운영기술(OT) 솔루션과 디지털 트윈, 설비 예지보전 등 공장 내 고정설비에 AI를 적용하는 방향으로 발전해왔지만, 비정형 작업과 레거시 설비 대응에는 한계가 있다고 진단했다.
제조업 현장에서 사람이 수행하는 작업 가운데 일정한 환경과 규칙을 벗어나는 업무는 기존 고정설비 중심 AX만으로 자동화하기 어렵다. 특히 뿌리산업을 비롯한 중소 제조기업이 다수 운영하는 구형 설비는 새로운 AI 시스템을 적용하기 위한 설비 교체와 데이터 구축 부담이 크다는 점도 제조 AX 확산의 제약요인으로 꼽힌다.
보고서는 이 같은 한계를 휴머노이드 등 피지컬 AI 로봇이 보완할 수 있다고 봤다. AI 로봇이 인간의 행동을 학습해 기존 작업환경을 그대로 활용하면서 비정형 업무를 수행하고, 레거시 설비도 직접 조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피지컬 AI의 초기 상용화가 제조 현장에서 나타날 가능성도 높게 평가됐다. 가사·돌봄 등 서비스 분야는 사람과의 상호작용 과정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비정형 상황을 학습해야 하지만 제조 현장은 상대적으로 작업환경과 과정이 구조화돼 있어 학습과 실증이 용이하다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보고서에서는 피규어 AI의 휴머노이드 ‘Figure 03’이 가사 작업에서는 연구소 훈련 단계에 있는 반면 제조 분야에서는 BMW 공장에서 현장 실증이 진행되고 있는 사례를 제시했다. 산업 자동화 관련 피지컬 AI 세계시장도 2025년 9,500만달러에서 2032년 18억8,870만달러로 확대되며 연평균 약 53% 성장할 것으로 전망됐다.
관건은 한국이 피지컬 AI 생태계에서 어떤 영역을 선점하느냐다. 보고서는 피지컬 AI 생태계를 △폼팩터 개발·설계 △제조 특화 AI 행동 학습 △액추에이터 △로봇손 △AI 파운데이션 모델 △온-디바이스 AI 반도체 등 6개 핵심 요소로 구분했다.
이 가운데 한국이 상대적으로 뚜렷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분야로 제조 특화 AI 행동 학습을 제시했다. 피지컬 AI는 문서나 영상과 같은 디지털 데이터가 아니라 실제 물리적 환경에서 로봇이 어떻게 움직이고 작업하는지를 보여주는 행동 데이터가 필요하다. 제조 현장과 생산 인프라가 광범위하게 구축된 한국은 이러한 데이터를 확보하고 실제 공정에 특화된 학습을 수행하기에 유리한 조건을 갖췄다는 분석이다.
반면 행동 학습 데이터는 로봇의 폼팩터에 종속된다는 점이 핵심 변수다. 어떤 로봇이 어떤 관절과 손, 구동계를 갖추고 있는지에 따라 수집되는 행동 데이터와 학습 결과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제조 현장만 국내에 제공하고 로봇은 외국 기업에 의존할 경우 한국의 제조 인프라가 글로벌 피지컬 AI 기업의 실증·테스트베드로 활용되는 데 그칠 수 있다는 것이 보고서의 지적이다. 제조 특화 데이터라는 비교우위를 실제 산업 경쟁력으로 연결하기 위해서는 자체 ‘K-피지컬 AI 로봇’ 폼팩터 확보가 병행돼야 한다는 의미다.
국내 산업계는 부품 분야에서 일부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액추에이터와 로봇손은 국내 기업들이 상당한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는 반면, AI 파운데이션 모델은 엔비디아와 구글 딥마인드 등 글로벌 기업이 선도하고 있으며 온-디바이스 AI 반도체 역시 글로벌 선도기업과의 격차가 존재하는 것으로 평가됐다.
이에 따라 모든 기술을 단기간에 내재화하기보다 국내의 비교우위를 출발점으로 생태계를 단계적으로 확대하는 전략이 필요하다는 것이 보고서의 제언이다. 단기적으로는 제조 특화 행동 학습을 중심으로 글로벌 기업과 협력해 제조 현장에서 피지컬 AI 적용 경험과 데이터를 축적하고, 중장기적으로는 내재화가 가능한 폼팩터와 핵심부품을 전략적으로 육성해 공급망 안정성과 부가가치를 높이는 방식이다.
제조 현장의 도입 역시 일괄적인 전환보다 기술 성숙도와 작업 난이도에 따른 단계적 접근이 제시됐다. 1단계는 10~20kg급 경량 작업용 로봇을 전자·반도체·소비재 분야의 자재 분류와 검사, 키팅, 머신 텐딩, 포장 등에 적용하고, 2단계에서는 20~30kg급 범용 작업용 로봇을 완성차와 일반 제조업의 조립 공정으로 확대하는 방식이다. 이후 개발·초기 실증 단계인 고강도 작업용 로봇을 조선·철강·플랜트의 용접과 고중량·위험 작업에 적용하는 3단계 로드맵이 제시됐다.
중소·중견 제조기업의 참여를 확대하기 위한 산업단지 단위 인프라 구축도 주요 과제로 제시됐다. 개별 기업이 자체적으로 AI 로봇 학습환경을 구축하기 어려운 만큼 산업단지 단위의 학습·실증 인프라를 마련해 제조 AX 도입 비용과 진입장벽을 낮춰야 한다는 취지다.
또 경량·휠 기반 로봇은 재정·제도 지원을 통해 실증과 상용화를 서두르고, 기술 불확실성이 높은 범용·고강도 작업용 로봇은 국방 연구개발과 연계해 개발·실증한 뒤 민간 제조 AX로 확산하는 방안이 제안됐다.
이준영 부연구위원은 “민간 중심의 강력한 피지컬 AI 생태계를 지닌 미국과 달리 중국은 국가 주도 전략으로 미국을 빠르게 추격하고 있다”며 “우리나라도 정부가 주도적 역할을 맡아 우수한 제조 인프라를 우리 로봇으로 학습시키는 선순환을 서둘러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