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7월 한-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조달기본협정 협상이 개시된 가운데, 한국 방산기업이 나토 공동조달시장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협정을 단순한 시장 접근 수단을 넘어 현지화·공동개발·안보협력을 연계한 동맹형 공급망 구축의 계기로 활용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왔다. 특히 캐나다 차세대 잠수함 사업에서 드러난 나토 비회원국의 구조적 한계를 고려해 협정 체결 이후 실질적인 시장 진입을 위한 중장기 전략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산업연구원(KIET, 원장 권남훈)은 12일 발표한 보고서 ‘한국-나토 조달기본협정 체결의 의미와 시사점’을 통해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32개국이 참여하는 군사·안보 협력체인 나토의 공동조달시장이 회원국 간 소요와 계약을 상호 분담하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비회원국의 시장 진입에는 동맹을 기반으로 형성된 제도·산업적 장벽이 존재한다고 진단했다.
최근 캐나다는 노후화된 빅토리아급 잠수함을 대체하기 위해 차세대 잠수함 사업(CPSP)을 추진하면서 30년 이상의 장기 운영유지(MRO) 지원 역량을 핵심 평가요소로 반영했다. 수주 경쟁에서는 나토 회원국인 독일이 우위를 확보했다. 상호운용성과 기존 군수지원체계에 대한 접근성, 장기간 축적된 동맹국 간 신뢰 등이 경쟁력으로 작용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는 향후 방산 수출 경쟁에서 무기체계의 성능과 가격뿐 아니라 장기간 축적된 안보협력과 군수지원 역량이 중요한 경쟁요소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나토 비회원국인 한국으로서는 제품 경쟁력만으로 이러한 구조적 격차를 극복하기 어려운 만큼 제도와 산업, 안보협력을 함께 묶는 접근이 요구된다.
한국-나토 조달기본협정은 국내 기업이 나토 지원조달청(NSPA)의 공동조달사업에 참여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해당 협정은 나토가 비회원국과 체결하는 지원 협력 협정으로 획득·군수·운용 및 체계지원 분야 협력의 법적 근거와 기본 원칙을 규정한다.
호주는 획득 분야를 포함한 지원 협력 협정을 체결한 유일한 나토 비회원국으로, 한국이 참고할 수 있는 선례다. 호주 사례를 보면 협정은 공동조달 참여를 위한 기반을 제공하지만, 법적 책임과 의무는 물론 국내 산업에 미치는 영향까지 함께 고려해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한국 역시 협정 체결 자체를 목표로 하기보다 공동조달 참여에 따른 산업적 효과와 국내 방산시장에 미칠 영향을 종합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협정 체결은 국내 방산기업의 나토 공동조달시장 접근성을 높이는 동시에 방산 공급망과 혁신 생태계 참여 기회를 확대할 수 있다. 다만 NSPA 계약에서 상위 5개국이 2023~2024년 기준 70~80%의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어 공동조달시장 전체를 국내 기업이 접근 가능한 시장으로 단순 환산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상호운용성 확보도 중요한 과제다. 나토 표준(STANAG)은 공동조달 참여를 위해 품목별 기준 충족을 요구하지만, 현재 한국은 글로벌 파트너국 자격으로 공개 등급 문서만 열람할 수 있다. 협정을 계기로 관련 정보 접근성이 개선되면 나토의 공통 요구성능과 표준 변화에 대한 대응력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아울러 나토의 방산 핵심원자재 공급망 구축사업과 혁신 생태계에 참여할 가능성도 확대된다. 이에 따라 완제품 수출 중심의 방산협력을 소재·부품 공급망, 공동 연구개발 등으로 확장할 수 있는 기반도 마련될 수 있다.
조달기본협정은 나토시장 진출의 중요한 출발점이지만, 협정만으로 실질적인 수주 경쟁력이 확보되는 것은 아니다. 나토 공동조달은 회원국 간 소요와 계약을 상호 분담하는 호혜적 구조로 운영되는 만큼 한국 기업이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나토 국가들과의 산업적 이해관계를 확대하고 장기적인 협력관계를 구축해야 한다.
특히 현지 생산과 정비 기반을 확보하는 현지화 전략, 나토 국가와의 공동개발 확대, 역내 협력수단을 활용한 안보협력 등을 병행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단순히 무기체계를 판매하는 공급자를 넘어 나토 방산 공급망의 지속적인 파트너로 자리매김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협정에 따른 시장 접근 확대가 국내 방산시장 개방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고려해야 한다. 공동조달의 상호주의 원칙과 국내 산업 영향을 함께 검토해 협정 내용을 설계하고, 국내 기업의 경쟁력 강화와 연계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산업연구원 박혜지 연구원은 “궁극적으로 나토 국가들과의 방산협력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공동의 이해관계에 기반한 안보협력과 신뢰관계 구축이 필수적”이라며 “나토 현지화와 공동개발을 확대하고 역내 협력수단을 활용하는 중장기 시장 진입전략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