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석의 소재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철 같은 금속을 떠올린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을 바꿔줄 물질이 나타났다. 국내 연구진이 플라스틱 자석을 개발한 것이다.
UNIST(총장 정무영) 에너지 및 화학공학부의 백종범 교수팀은 TCNQ라는 유기화합물에 반응을 일으켜 자성을 띠는 구조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고 지난 3일 밝혔다.
물질이 자성을 띠는 이유는 내부 전자들의 스핀(물리량 중 하나, 고유한 각 운동량)이 한 방향으로 정렬되기 때문이다. 스핀은 전자가 갖는 벡터(크기와 방향을 동시에 나타내는 물리량)형태로 업(up) 스핀과 다운(down)스핀으로 표현된다.
보통 분자에서는 스핀 방향이 반대인 2개의 전자쌍이 안정된 상태로 존재한다. 하지만 전이금속 등에서 이런 스핀들이 한쪽으로 정렬되면 커다란 자기(스핀) 모멘트(여러 물리량의 분포 상태)를 갖게 되는데 이런 물질을 강자성체라 부른다.
금속이 아닌 물질 대부분의 전자들이 화학결합으로 단단하게 묶이며, 항상 업 스핀과 다운 스핀이 쌍으로 존재해 강자성(물질 내부에 스스로 자기를 띄는 것)을 가지기 어렵다.
2004년 영국 더럼대 연구진이 네이처(Nature)에 보고한 유기물로 만든 플라스틱 자석은 재현성이 검증되지 않아 금속으로 오염된 것으로 추측된 바 있다.
백종범 교수는 “2004년 발표된 논문이 철회되자 플라스틱 자성은 불가능하다는 인식이 퍼졌지만, 유기물에도 금속처럼 자유전자가 많아지면 스핀을 정렬시켜 자성을 띠게 만들 수 있다”며 “이를 증명하기 위해 금속 오염을 철저히 배제하면서 연구를 진행해 자성을 부여하는 데 성공했다”고 말했다.
이번에 사용한 TCNQ라는 유기화합물은 고온에서 반응시킬 때 급격하게 분자량이 커지면서 망상구조의 고분자(플라스틱)를 형성한다. 이때 탄소 원자 사이에 형성되는 이중결합(시그마결합과 파이결합) 중 상대적으로 약한 파이결합이 물리적 힘에 의해 끊어지게 된다.
이 과정에서 생긴 자유전자들이 다시 결합하기 전에 플라스틱을 빠르게 굳히면 스핀이 쌍으로 존재하지 못하고, 적당한 거리에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강자성을 띠게 된다. 유기물도 상온에서 강자성을 가질 수 있다는 걸 처음 입증한 것이다.
백종범 교수는 “이번 연구는 유기물 기반 자성 재료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할 뿐 아니라 강자성을 띠도록 더 많은 자유전자를 가진 새로운 구조체를 설계해 보다 강력한 플라스틱 자석을 개발하는 데 기여할 초석을 다지는데 의의가 있다”며 “과학적 호기심과 플라스틱 자석의 잠재적 응용 가능성 덕분에 많은 분야에서 주목받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백 교수는 이어 “플라스틱 자석은 녹슬지 않아 영구적으로 쓸 수 있고, 인체에 흡수되지 않아 MRI 촬영 시 조영제로 활용하기도 좋을 것”이라며 “실생활에 사용하기 위해서는 강자성의 세기를 더 높이는 등 후속연구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번 연구는 UNIST 신소재공학과의 유정우 교수와 박정민 석·박사통합과정 연구원, UNIST 물리학과 신동빈 석·박사통합과정 연구원이 함께 참여했다. 연구지원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연구재단의 리더연구자사업, BK21플러스, 선도연구센터, 중견연구자지원사업을 통해 이뤄졌다.
또한 p-TCNQ로 이름 붙여진 플라스틱 자석은 세계적 권위지 셀(Cell)의 자매지, 켐(CHEM) 8월 2일자로 공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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