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연구진이 빛의 속도를 조절할 수 있는 소자를 개발하는데 성공했다. 신호를 처리하는 전자소자를 대체해 빛으로 신호를 처리하는 길을 여는데 도움을 줄 전망이다.
IBS 나노구조물리 연구단(단장 이영희) 김튼튼 연구교수팀과 민범기 KAIST 기계공학과 교수 공동 연구진은 메타물질과 그래핀을 접합해 빛의 속도를 느리게 만들었다가 다시 빠르게 올리는 소자를 제작하는데 성공했다고 지난 15일 밝혔다.
현재 우리가 쓰는 광통신에서는 빛의 유무를 0과 1의 전기신호로 전송한다. 빛이 전기 신호로 바뀔 때 전자소자의 신호처리 속도에 한계가 있어 빛의 속도가 느려져야만 원활한 정보처리가 가능하다.빛의 속도를 느리게 하는 건 운전 시 브레이크를 밟는 것과 비슷하다.
김튼튼 교수는 “자동차(빛)가 고속도로(광섬유)에서 달리던 속도로 도심(빛→전기)으로 들어왔고, 신호등(소자, 회로 등)을 통해 분배하고 통제해야 하는데, 속도가 빠르면 제어에 어려움이 생긴다. 브레이크를 밟아 속도를 늦춰줘야 하는 상황처럼 빛도 느려져야 처리가 용이하다”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이번 연구에서 물리적 현상인 전자기 유도 투과 현상을 메타물질에 구현하는 방식으로 빛의 속도를 조절하고자 했다. 메타물질은 자연계 존재하지 않는 특성을 구현하기 위해 만든 인공물질이다. 이른바 ‘투명망토’를 만들 수 있는 물질이기도 하다.
전자기 유도 투과란 강한 빛(A)을 물질에 쏴 물질의 굴절률 상태가 변할 때, 다른 빛인 제어빛(B)을 같은 방향으로 쏘아주면 그 빛이 물질에 흡수돼버리는 바람에 투과할 수 없던 빛(A)이 오히려 물질을 바로 통과해버리는 현상을 말한다.
이때, 물질의 굴절 변화율이 커지면서 빛의 속도가 느려지는 원리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전자기 유도투과 현상은 극저온 환경과 강한 세기의 제어빛, 그리고 복잡한 실험환경이 필요했다. 이에 연구진은 전자기 유도 투과 현상을 구현하고자 메타물질을 설계해 소자를 제작했다. 인공원자로 이뤄진 메타물질은 자연계에 존재하지 않는 특성을 구현할 수 있다.
연구진은 금으로 만들어진 뚫린 고리형 구조와 막대구조의 인공 원자를 고분자 형태의 기판에 두 층으로 나누어 메타물질을 설계했다. 두 구조 사이의 위치를 조절해 물질의 굴절률을 급격히 변화시키자 빛의 속도가 느려졌다.
이렇게 만들어진 소자는 수십 마이크로미터의 매우 얇은 두께에도 불구하고 상온에서도 작동하며 강한 세기의 제어빛이 없어도 전자기 유도 투과와 유사한 현상이 나타난다.
느려진 빛을 다시 빠르게 제어할 수 있는 방법도 구현했다. 연구진은 그래핀을 메타물질과 이온젤 사이에 껴 넣고 전압을 걸자 물질의 굴절률이 변화하는 것을 확인했다. 그래핀에 걸어주는 전압의 세기가 커질수록 메타물질의 특성이 약화되며 급격히 변했던 물질의 굴절률이 완만해지고, 빛의 속도가 다시 빨라지는 것이다.
김튼튼 연구교수는 “이번 연구에서 구현한 소자에는 테라헤르츠 주파수를 갖는 빛(테라파)를 이용하도록 제작되었다. 테라파는 차세대 초고속, 대용량 통신 뿐 아니라 이미징 및 분광 기술에도 적용될 수 있어 큰 잠재시장을 갖고 있다”며 “효과적으로 빛의 속도를 제어할 수 있어 낮은 에너지로도 구동되는 소자 개발 혹은 능동형 초고속 광 아날로그 디지털 변환기 등과 같은 광통신 발전 기술에 응용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한편, 연구성과는 미국 화학회지가 발행하는 광학분야 전문학술지 ‘ACS 포토닉스(ACS Photonics)'에 5월 16일 출판됐다. 또한 올 3월부터 5월까지 저널 중 가장 많이 읽힌 논문으로 기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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