융합 통해 미지의 영역 도전
■ 국가 연구기관으로 50년간 지속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인가 달파 프로그램 도입 준비, 평가제도 개혁
신기술의 개발이 전적으로 필요했던 한국의 산업발전단계에 비해 기술 수준이 올라간 지금은 말 그래도 혁신적인 뭔가를 도출해 내지 않으면 기여할 수 있는 요소가 적다. 한편으로는 KIST가 산업화를 위해 기울인 노력이 기업·대학들에게 필요한 연구를 스스로 할 수 있을 정도로 역량을 키우는데 일조했다는 생각도 든다.
지도교수 개인단위 소규모 연구와 단기적 경제성에 초점이 맞춰진 기업의 연구와 비교해 KIST는 연구규모나 주제에 있어 훨씬 크고 포괄적이다. 국가의 기술경쟁력을 위해 몇십, 몇 백년 후의 미래산업을 준비하는 프로젝트를 주로 선정하고 있으며, 전문연구기관들이 한 분야에만 집중적인 연구를 하는데 반해 기술 융합을 이끌어낼 수 있는 종합연구소다.
KIST는 2000년대 들어서 새로운 융합분야에 대한 수요가 커지면서 연구조직을 대폭 개선해 지금과 같은 문제해결 중심의 융합조직으로 변화했다.
융합전략 테스트 첫 해에는 뇌과학연구소와 의과학연구소를 만들어 바이오, 메디컬 뿐만 아니라 전자, 재료, 화공 등 굉장히 다양한 인력들을 모집해서 자연스럽게 융합문화를 조직했고 성과들도 가시화되기 시작했다. 미지의 세계라고 불릴만큼 아는 바가 없어 연구실이 없었는데, KIST에서 연구를 시작하자 DGIST, KAIST 등에 뇌과학 분야 연구실이 생겼다.
이듬해에는 녹색도시기술연구소, 다원물질융합연구소 등을 신설했고, 2015년에는 차세대반도체연구사업 등 로봇과 소재분야 2개 연구소가 새롭게 발족될 예정이다.
차세대반도체연구사업에서 준비하고 있는 포스트실리콘반도체(post silicon semiconductor)는 대기업들이 굉장히 고민하고 있는 것이고, 우리와 상호보완적이다. 기존에는 이론만 있었던 것들이 KIST에서 실험을 하기 시작하면서 스핀트로닉스 등 다양한 시도를 통해 가시적인 연구결과를 사업화 할 수 있을 정도로 산업계에 이바지하고 있다.
50년 전 선배 연구자들이 선진국의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고 제품을 개발하기 위해 ‘불이 꺼지지 않은 연구소’를 만들어 경제발전의 터전을 마련했듯이, KIST는 융합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누구도 가보지 않았던 미지의 영역에 도전하고, 녹조, 치매 등 국민이 체감하는 연구 그리고 국가와 기업이 필요로 하는 연구로 보답해 나갈 것이다.
■ 원동력을 융합이라고 했다. 자부심이 높은 연구원들이 융합하기 위한 전략은
연구원들이 가장 스트레스 받는 부분은 ‘평가’다. 과거와 달리 늘어난 25개의 출연연은 보이지 않는 경쟁 속에서 가시화된 성과를 제시할 수 있어야만 기관의 명성을 유지할 수 있다.
이에 따라 논문과 특허의 발표는 갈수록 늘어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기업이 체감할 수 있는 성과는 찾기 어렵다. 양적 성장도 물론 중요하지만 질적 성장을 위한 조직개편과 평가체계 개편을 2015년 1월1일자로 감행할 계획이다. 9월 취임 이후 지난 몇 달간은 이런 것들을 파악하기 위한 연구원들과 소통에 주목했다.
결론은 연구자들의 연구하는 행태를 바꾸겠다는 것이다. 최근 청와대의 요청뿐 아니라, 미래부 장관 주도하에 R&D혁신 논의가 많이 되고 있다. 과학교육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화공, 금속, 기계과 할 것 없이 논문들 대다수가 재료와 연관돼 있고 학과의 특성이랄 게 없는 논문들은 출연연구소와 마찬가지로 기관평가, 개인평가 등에 치이고 있다. 국가 연구소는 기본적으로 국가에 필요한 연구를 해야 하는데 무언가가 잘못됐다.
그 해결책으로 미국 달파(DARPA, 미국 방위 고등 연구 계획국)형 프로그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목적지향성 평가제도로 변화할 것이다.
아주 기초적이고 너무 먼 미래라서 목적설정조차 할 수 없는 분야를 제외하고는 원천기술에 대해 적어도 어느 수준이 돼야 산업에서 적용 가능하다는 기준이 있다. 그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각 연구분야에서 어떤 접근법을 적용해도 가능하며 그 주체가 로봇이든, 재료든, 의료든 목적을 달성해 문제해결만 가능하면 그 팀은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게 되는 시스템이다.
어떤 목표에 도달하는 것과 그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서 정말 열심히 했는데 실패한 사례, 역시 실패보고서 발표를 통해서 동일한 것을 반복하지 않도록 정보화해야 한다.
이 시스템은 기존 평가방식에 비해 10배정도 노력이 필요하다. 연구원들이 힘들어지겠지만 결국 이런 평가제도를 통해 연구원도 값진 성취감을 얻을 수 있을 것이고, 연구기관의 명성·존재이유는 지켜질 것이다.
더 이상 연구비를 따라다니는 연구원은 없애고, 특정한 주제에 대해서 고민하는 연구원들을 양성할 것이다. 연구원은 30대 후반후터 50대까지 가장 연구로서 성숙기인데, 연구과제를 위해 사방팔방 다니는 것이 참 안타까웠다.
사회현안 해결, 국민 체감하는 연구 앞장
■ 2015년에 반드시 이루겠다고 결심한 것이 있나
기본적으로 구성원들이 좋아하는 일터를 만들고자 한다. 그런면에서 일하기 좋은 공공기관 대상 3년 연속 수상, 여성과학자들이 일하기 가장 좋은 직장 2위 등, 많은 타이틀을 섭렵해 왔다.
KIST는 2년 연속 청렴도 1등급도 받았다. 연구원들에게 뿐만 아니라 지역사회 주민들에게, 넓게는 대한민국 전 국민들, 넘어서서 세계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연구소가 되고자 한다.
사회적으로 연구기관으로서 아쉬웠던 점이 과학기술에 관계되는 광우병, 기름유출사고, 세월호, 조류독감 등 사회적인 이슈가 생겼을 때, 과학출연연들이 아무런 답을 못하는 무력감을 느낀다는 점이다.
먼 미래에 대한 연구를 하지만 눈 앞에 닥친 사회현안에 대해서 등한시 하면 미래는 없다. 치매, 녹조 등 몇가지 사회문제 연구를 시작하려고 보니 KIST가 모든 전문가를 보유하고 있는게 아니었다. 과감하게 외부에 공개해 책임자도 외부에서 섭외하고, 연구비도 반 이상 투자하는 등 투명화하자, 다른 연구소나 대학에서 굉장히 높은 호응을 얻었다.
◇ 타기관과의 융합 연구
ORP(Open Research Program)사업이라고 해서 타 기관과의 융합과 협력을 이끌어내는 개방형 연구사업을 집중적으로 하고 있다. 녹조사업의 경우 녹조제거 및 수계에서 검출되는 잔류 의약물질에 의한 잠재적 위험성을 관리하기 위한 연구로 ‘예방’과 ‘제거’를 전 주기적·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통합형 녹조 방제 기술’을 철저히 현장에 적용(낙동강 창녕부근)하고 있는 방식이다.
하수에 함유된 미량의 의약물질들이 전체 하수처리 과정에서 어떻게 제거되고, 변환되는가를 파악해 수계로의 배출을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방안을 연구하는 등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연구가 진행 중이다.
또한 K-BRIDGE사업이라고 해서 KIST의 연구성과와 기업 기술과 간극을 메우는 후속연구를 통해 결과를 도출하는 사업이 외부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있다.
◇ 지역 발전
지역 및 국제 사회와의 소통에 더욱 세심한 관심을 가질 예정이다. KIST가 위치한 홍릉에는 KIST, 국방연구원, 산업연구원, 한국농촌경제연구원, 국방기술품질원, 영화진흥위원회, 한국개발연구원 등이 모여 홍릉연구단지를 형성했는데 최근 공공기관 지방이전 사업의 일환으로 국방연구원과 KIST를 제외하고는 모두 내려가게 돼 홍릉 지역이 텅 비게 됐다.
최근 홍릉연구단지 활성화에 대한 사업을 추진하며 외부 기관의 의견을 들을 기회가 많았는데, KIST는 고립된 섬과 같은 기관이 아니라 인근기관, 지역사회와 함께 발전하는 기관으로 거듭나야 함을 절실히 느꼈다. 또한 이를 더 확장해 우리나라를 넘어 후발개도국에 경험과 노하우를 전수하면서 제2, 제3의 V-KIST 사례를 창출하고 싶은 바람이 있다.
이를 실천하기 위해 2년전부터 홍릉포럼이라는 것을 만들어서 이 지역을 어떻게 재활성화할지에 대해 고민했고, 내년 초부터 기획재정부를 중심으로 본격적인 추진이 이뤄진다. 고급 인력과 메가도시 기반의 혁신 클러스터 조성은 전세계적 추세다. 수도권 유일의, 박사급 인력만 5,200여명이 상주하고 있는 홍릉단지는 글로벌 지식 혁신 클러스터로 조성이 가능하리라고 본다.
■ KIST가 진행하고 있는 기술협력네트워크에 대해 설명해 달라
KIST가 추진 중인 대외 협력네트워크는 세 가지다.
첫 번째는 선진 연구기관과의 공동연구 강화를 위한 네트워크로 현재 전 세계 40여개국 251개 연구기관과 글로벌 공동연구를 수행중이며, KIST가 게재한 논문 48%는 국제공동연구로 도출된 것이다.
예를 들어 스위스 연방재료연구소(EMPA)와는 수소저장물질의 사업화와 관련한 공동연구사업을 올 초부터 진행 중이고, 독일의 칼스루헤공대와 로봇, 재료 분야 연구에서 협력하고 있다.
KIST-유럽(연)은 출연(연) 유일의 해외 연구거점으로서 앞으로 출연(연)의 EU 내 융합·협력거점으로 자리매김할 예정이며, 한-인도 과학기술협력센터에서는 인도가 강점을 가진 SW 기술을 접목할 수 있는 창구 역할을 할 것이다.
두 번째로 KIST는 한국형 과학기술 발전 모델을 해외에 전파할 수 있는 다양한 협력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다. 지난해 9월 체결된 한·베 과학기술연구원(V-KIST) 사업은 KIST로 대표되는 한국 과학기술발전 모델의 대표적 개도국 수출 사례다. 앞으로 제2, 제3의 V-KIST사례를 발굴해, 과학기술을 통한 국격 제고에 기여하고자 KIST는 주한 개도국 과학참사관 회의를 매년 개최하고 있으며, 또 Seoul S&T Forum을 개최해, 과학기술 ODA분야 아젠다를 주도하고 있다.
세 번째는 KIST가 보유한 기술들을 활용해 중소·중견기업의 성장을 지원하고자 하는 기술협력 네트워크다. KIST는 기술사업화 조직을 부원장 직속으로 올해 신설해 유망 중소기업을 글로벌 챔피언으로 육성하기 위한 회원제 프로그램인 K-Club을 운영 중이다.
현재 36개사 수준의 회원을 3년 내에 70개사 수준으로 확대해, 출연(연)- 중소기업 간 기술협력의 새로운 모델로 제시하고자 하니 깊은 관심을 가지고 향후 KIST의 활동을 주목해 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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