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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3-11-15 11: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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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은 가슴으로 나누는 사랑이다”


누구나 그러하듯 교직생활을 시작하는 근무지에서 혹독하게 신고식을 했다. 한문교육학을 하고 국문학을 부전공으로 하여 태능중학교 국어교사로 처음 부임했는데 열정은 하늘을 찌르는데 수업 분위기는 영 엉망이었다.

갖은 지식을 다 알려주고 싶었지만 아이들은 한문학으로 단련이 된 나의 말을 거의 알아듣지 못했다. 집에 와서 투덜거리니 아버지(당시 초등학교 교사)께서 “딴 짓하지 말고 가서 만화영화나 보라”고 하셨다. 1주일 만화영화만 보고 중학교 1학년 수업을 하니 겨우 눈이 반짝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른바 눈높이 교육이었다.

태능중학교에서 4년을 근무하고 1986년 3월 초 청량고등학교에 부임하니 ‘남자에 젊다’는 이유로 학생부 교외지도계를 맡겼다. 당시 그 학교에는 ‘미완성’, ‘흑기사’, ‘고인돌’ 등의 불량써클이 있었다. 청량리 휘경동 일대의 조직폭력배들도 두려워하는 모임이다.

필자가 맡은 반에도 거기에 가입한 녀석이 있었다. 일단 폭력써클을 해체시키려고 했으나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명단을 파악하는데도 오래 걸렸고, 이 아이들을 정상적인 학생으로 만들기도 어려웠다.

우선 아이들과 상담하기로 하고 주말 산행을 계획하였다. 다행히 당시의 교장은 아무 질문도 하지 않고 허락해주었다. 사실 학교장들은 요선도학생과 산행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사고가 많이 나기 때문이다. 계룡산에도 가고 남한산성에도 가고 주말마다 아이들을 바꿔가며 산행을 했다.

불량써클에 가입한 영호(가명)는 항상 포함시켰다. 같이 막걸리도 마시고, 산행 후 목욕도 하면서 서로의 속내를 털어놓을 수 있는 사이가 되었다. 그 아이의 이야기는 단순했다. 집에서 귀하게 자라 무서운 것이 없었는데, 고등학교에 오니 선배와 친구들이 잘 해주고 겁도 주면서 동참하기를 종용했고, 이미 그 써클에 대해 들은 것도 있어 자연스럽게 가입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눈높이 맞춰 대화하는 것이 시작

관심 받고싶은 아이들에 관심 줘야


그 후 ‘미완성’에 가입한 1, 2학년 아이들을 하나씩 면담하였다. 실제로 난폭한 아이도 있었지만, 거의 대부분의 아이들은 뭉쳐 있으면 용기(?)가 나고 다른 친구들의 괴롭힘을 당하지 않기 때문에 모인다는 것을 알았다.

필자는 1학년을 담임하고 있었기 때문에 주로 1학년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이들이 써클에 포함되지 않도록 주력했다. 학생의 성향에 따라 다양한 방법을 시도했다. 주로 자율학습시간과 주말을 이용한 대화와 산행은 계속하였다. 때릴 때는 넓은 주걱을 사용하여 엉덩이를 팼다. 음향효과가 좋고, 별로 아프지도 않다. 결국 원하는 결과를 얻었고, 필자가 근무하던 기간 중에는 폭력사건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 후 오랜 세월이 지났다. 중부대학교에서 강의를 마치고 늦은 시간까지 연구실에 앉아 있는데, 연구실 전화벨이 울렸다. 영호였다. 참으로 반가운 마음에 어디에 있느냐고 했더니 갑자기 내가 보고 싶어서 서울서 내려왔다는 것이다. 당시에는 차도 없어서 기차와 버스를 타고 와야 했고, 필자는 학교를 여러 번 옮겨 소식도 알 수 없는 시절이었다.

반가운 마음에 주차장으로 달려가서 기다리고 있는데 어둠 속에서 세 녀석이 넓죽 절을 하였다. 영호와 그 떨거지(?)들이었다. 참으로 반가웠다. 그날 밤 옛이야기로 꼬박 새웠다. 더욱 고마운 것은 영호가 목사가 되어 나타난 것이다.

가슴을 열고 대화를 하면 통하지 못할 것이 없다. 필자는 자주 말한다. “교육은 가슴으로 나누는 사랑”이라고. 당시 영호 엄마와 자주 통화하고, 그 녀석의 성향과 집에서의 행동과 학교에서의 행동을 주시하면서 상담한 것이 주효했다. 관심받고 싶어할 때 적당한 관심을 주면 아이는 변한다.

한 때 속을 썩였어도 지금 잘 살아주는 녀석들이 고맙다. 가끔 카카오 톡으로 문자 받는 것으로 만족한다. 세월이 흘러 지금은 예전처럼 때릴 힘도 없다. 그렇게 때려서도 안 된다. 벌써 교단에 선 지 32년이 흘렀다. 지금 아이들은 교수보다는 아버지같다고 한다. 그 말이 더 고맙다.

아이들과 소통하면서 정신연령은 19세로 멈춰버렸다. 세월을 잡아두고 늘 10대로 살고 싶은데 머리엔 서리가 내렸다. 돌아보면 부끄럽고, 아직도 부족하고 더 닦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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