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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3-10-31 13: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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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음주문화, 제대로 알고 즐기자




한잔 먹세 그려 또 한잔 먹세 그려
꽃 꺾어 算놓고 무진무진 먹세그려
이 몸 죽은 후면 지게 위에 거적 덮어
주리어 매어 가나 유소보장에
만인이 우러르나 억세 속새
떡갈나무 백양 숲에 가기만 하면
누른 해 흰 달 가랑비 함박눈
소소리 바람 불제 뉘 한 잔 먹자할꼬
하물며 무덤 위에 잔나비 휘파람불 제 뉘우친들 어쩌리
<송강 정철, ‘장진주사’>




조선 중기 문인이자 시인인 송강 정철은 애주가로도 유명하다. 그가 쓴 ‘장진주사’는 문학으로서 사설시조의 효시라는 중요한 점도 있으나 술에 관한 그의 견해를 밝힌 것으로 절창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죽은 다음에 후회하지 말고 살아있을 때 부지런히 음주를 즐기자는 내용이다. 음주는 주망의 세계라고 하여 취한 속에서 행복을 찾자는 정신이다. 우리나라는 예부터 음주 문화가 발달하였다. 옛날 부여에서는 ‘은나라 역법으로 정월이면 하늘에 제사하고 국중대회를 열고 연일 음주가무를 즐겼다’고 했으며, 고구려도 ‘주야로 음주가무를 즐겼으니 이름하여 무천(舞天)이라고 한다’고 했다. 이와 같이 술과 관련된 설화는 무수히 많다. 해모수의 이야기에도 해모수가 유화에게 술을 먹여서 사통하기도 하고, ‘공무도하가’에도 백수광부가 술을 마시고 물에 들어가 스스로 제물이 되기도 하였다. 이렇게 술은 옛날부터 우리 민족의 삶 속에 깊이 자리한 하나의 문화였다.

술을 마시는 것을 일컬어 조지훈은 ‘인정을 마신다’고 했다. 서양의 세르반테스는 ‘까닭이 있어 술을 마시고, 까닭이 없어도 술을 마신다. 그래서 오늘도 술을 마신다’고 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술은 인생과 밀접한 관계에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술을 아무렇게나 마시면 주도(酒道)를 모른다고 하고 혹은 예의가 없다고 한다. 주도를 알고 마시면 술을 마시는 행위가 예술이 될 수도 있다. 윤선도의 시조에 ‘술도 먹으려니와 덕(德)없으면 난(亂)하니리/춤도 추려니와 예(禮)없으면 잡(雜)되려니/아마도 덕례(德禮)를 익히면 만수무강(萬壽無疆)하리라’고 했다. 술을 마시려면 일단 덕을 갖춰야 하고 춤을 추려면 예의를 갖춰야 한다. 나이트클럽에 가서 마구잡이로 엉덩이를 흔드는 것이 아니라 예의를 갖추고 춤을 추라는 말이다. 그러면 술을 마실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한국인의 주도에 대해 생각해 보자.

■ 술마시기 전 알아야할 주도들

우선 술을 마실 때는 1, 3, 5, 7, 9의 원칙이 있다. 이것을 풀어서 말하면 ‘술을 마실 때는 석 잔을 원칙으로 하되 다섯 잔은 허용되며 일곱 잔은 넘을 수 없다’는 말이다. 이것은 술을 마실 때 잔 수를 홀수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혹자는 말하기를 “짝수는 꽉 찬 수이고 홀수는 비어 있으니 다음에 마실 것을 대비하여 홀수로 마신다”고 하는데 이는 잘못된 표현이다. 짝수는 음(陰)을 상징하고 홀수는 양(陽)을 상징한다. 음을 상징하는 숫자로 술을 마시면 내장을 상하게 하기 때문에 건강을 위하여 홀수로 마시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잔의 크기가 정해져 있지 않다는 것이다. 술을 많이 마시는 사람은 바가지로 석 잔을 마시면 될 것이요, 술을 못 마시는 사람은 조그만 정종 잔으로 석 잔을 마시면 된다. 상당히 융통성이 많은 원칙이다. 중요한 것은 잔을 너무 빨리 비우지 말고 여유있게 석 잔을 마시라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여기서 하나 덧붙일 것은 ‘주불단배(酒不單盃)’라고 하여 한 잔의 술은 없다는 것이다. 한 잔 술은 정이 떨어지기 때문에 마시지 않는다. 그래서 석 잔이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석 잔을 품배(品杯)라고 한다. ‘가장 품위 있는 잔’이라는 뜻이다. 넉 잔은 효배(嚻杯)라고 한다. 글자 그대로 ‘시끄러운 잔’이라는 뜻이다. 넉 잔을 마시면 말이 많아지기 때문에 ‘시끄러울 효’자를 쓴다. 이는 술을 마시는 사람의 숫자와도 관련이 있다. 가능하면 홀수로 만나서 마시라는 것이다. 짝수로 앉아서 마시면 패가 나뉘게 되므로 홀수로 앉아서 마시면 분위기가 좋다는 의미를 담고 있기도 하다. 필자가 어렸을 때는 대폿집이 꽤 많았다. 어린 마음에 집집마다 대포를 하나씩 지니고 있는 집인 줄 알았다. 대포는 ‘큰 바가지’를 의미하는 것으로 대포(大匏)라고 쓴다. 술은 금속성과는 금기로 되어 있어서 술을 풀 때는 항상 바가지로 펐던 것이다. 그래서 다른 집보다 큰 바가지로 떠 준다는 의미로 대포집이라고 했고, 더 큰 바가지로 떠 주는 집은 ‘왕대포집’이 된 것이다. 왕대포로 석 잔을 마시면 보통 사람이면 누구나 취할 정도가 될 것이다.

그날 일수가 사납지 않으려거든 ‘해장술’을 마시지 말라고 하는데 원래는 해정(解酲)이 맞는 표현이다. 술 때문에 걸린 병이 정(酲)인데 술로 인해 걸린 병은 술로 푼다(以毒制毒)는 원리다. 이것이 세월이 흐르면서 사람들이 해장(解腸)으로 잘못 인식하게 되었고, 현대에 와서는 ‘해장국’처럼 굳어버렸다. 영어로도 ‘아이 오프너(eye opener)’라고 한다고 하니 우리말로 하면 개안주(開眼酒)라고 해야 하나? 이독제독의 원리로 해서 아침에 속을 풀어준다고 술을 마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날의 일진을 잘 보전하려면 해장술은 마시지 않는 것이 좋다.

예로부터 내려온 酒道 알면 실수 없어

무분별한 젊은이들 음주 문화 아쉬움



나이 많은 사람과 술을 마실 때는 ‘소학’에 의하면 “어른과 술을 마실 때는 일어나 절하고 술동이가 있는 곳에 가서 마신다(侍飮酒於長者 酒進則起 拜受於樽所)”고 했고, “어른이 다 마시지 않았으면 어린 사람은 감히 마실 수 없다(長者擧未嚼 少者不敢飮)”고 하였다. 요즘 어른이 잔을 비우기 전에 먼저 홀짝 마시는 젊은이를 많이 보는데 이것은 잘못된 습관이다. 어른이 다 마시는 것을 보고 속도를 맞춰야 한다. 그러니 어른보다 더 많이 마실 수는 없다. 술을 마실 때 소리가 나서도 안 된다. 마시고 나서 “캬”하고 소리를 내거나 벌컥벌컥 소리가 나게 마시는 것은 예에 어긋나는 행위다. 술동이가 있는 곳에 가서 마시는 것은 지나치다고 할지라도 고개를 돌리고 마시는 정도의 예는 갖추는 것이 좋다. 같이 마시다가 어른이 먼저 일어나서 갈 경우 일어나 보이지 않을 때까지 배웅하라고 했다. 보이지 않을 때까지 배웅하는 것은 어렵더라도 자리에서 일어나 공손히 인사하는 정도는 지켜야 예에 맞다고 하겠다.

술을 마실 때 말을 너무 많이 하면 안 된다. 술을 마실 때 원맨쇼하는 친구들이 많다. ‘명심보감’에 “술을 마실 때 말을 하지 않으면 참된 군자다(醉中不語 眞君子)”라고 하였다. 물론 술에 취해서 말을 하지 않는다는 뜻이지만 바꿔서 말하면 혼자서 지나치게 말을 많이 하지 말라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좌중의 분위기를 잘 맞추면서 즐길 줄 아는 사람은 참다운 주성(酒聖)이라 할 수 있다. 분위기를 맞추는 것이 아니라 혼자서 잘난 척 하고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사람은 주도를 모르는 주졸(酒卒)이다. 주장(酒將)은 아니더라도 주졸이 되어서는 안 되겠다.
건배(乾杯)는 한 번이면 족하다. 술을 마시다 보면 건배를 제의하는 사람들을 자주 볼 수 있다. 회장이 한 말씀하고, 부회장이 한 말씀하고, 거시기가 한 말씀하고 막내가 또 한 말씀하고……. 이런 식으로 돌아가면서 건배제의를 하다보면 몇 잔을 마셨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취하게 된다. 우선 건배라는 말은 “잔을 말리자”는 뜻이다. 즉 잔을 비워야 한다. 중국인과 술을 마시면서 건배를 하면 자기가 비운 잔을 보여준다. 확실하게 건배를 했다는 뜻이다. 물론 우리나라 사람들도 머리에 잔을 거꾸로 쏟으면서 ‘확인’하는 것을 보기도 하였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석 잔을 품배(品杯)라고 하고 품위 있게 주량에 맞춰 마시고 있는데 여기저기서 건배를 제의하면 주량을 넘을 수밖에 없다. 건배를 하고 잔을 비우지 않는 것도 예의에 어긋나는 것이니 차라리 건배를 한 번에 하고 나머지는 자신의 주량에 맞게 마시는 것이 바람직하다. 사족으로 붙일 것은 건배하면서 잔을 부딪치는 것이다. 합금치(合金觶)라하여 혼인날 신랑과 신부가 몸을 합한다는 의미로 술잔을 맞댄다. 남녀가 술좌석에서 건배하면서 함부로 술잔을 맞대는 것은 볼썽사납기 그지없다. 자제하는 것이 좋다.

첨작(添酌)은 불가하다. 예전에 일본인과 술을 마실 때 조금만 마셔도 잔을 채워주는 것을 보고 불쾌하게 여긴 적이 있다. 공손하게 한국에서는 술잔이 비기 전에는 더 따르지 않는 것이 예의라고 말한 후부터 자제하는 것을 보았다. 우리나라는 제사를 지내는 중간에 첨작을 한다. 즉, 죽은 사람에게 하는 예인 것이다. 산 사람을 죽은 사람의 예로 대하는 것은 빨리 죽으라는 의미와 같다. 특히 어른과 술을 마실 때 첨작을 하면 화를 내는 것을 종종 본다. 노인에게 빨리 죽으라고 하면 당연히 기분 나쁘기 마련이다. 한국에는 한국인의 주도가 있으니 따르는 것이 좋다고 본다.

손바닥이 보이면 안 된다. 영화를 보거나 TV를 보면 가끔 옆에 있는 사람에게 술을 따르면서 손바닥이 보이도록 뒤집어서 권하는 경우를 본다. 우리나라는 손바닥을 거부의 의미로 본다. 싫다고 할 때 손사래를 치는 것과 같다. 그래서 옆 사람에게 술을 권할 때도 반드시 돌아앉아서 손등이 보이도록 술을 따라야 한다. 맥주의 경우 상표가 보이지 않게 쥐고 손등이 위로 가게 해서 따르면 실수할 일이 없다. 오른손으로 거머쥐고 왼손으로 병의 밑 부분을 받치듯이 하면 좋다. 옛날에는 술의 종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대접하는 것이 중요한 일이므로 술은 호리병이나 주전자에 담아서 가지고 왔다. 요즘은 병으로 하기 때문에 예전에 호리병에 담겨있던 것을 본받으면 실수할 일이 없다.

주주반객(酒主飯客)은 술이 우선이고 밥은 다음이라는 뜻이다. 어렸을 때 멀리서 손님이 오면 어머니께선 시장할까 바 식사를 먼저 내 오시곤 했다. 그러면 할아버지의 불호령이 쉼표도 없이 날아들었다. 술 마시지 말라는 것이냐고 후렴구가 항상 따라다녔다. 우리의 풍습을 본다면 손님이 오면 먼저 술을 대접하고 그 다음에 식사를 하게 되어 있다. 친구 중에도 이런 경우를 가끔 본다. 술을 마셔야지 밥은 왜 먹느냐고 한다. 전통적인 주도는 이것이 맞다. 제사지낼 때 술을 먼저 올리는 것도 이러한 예절에서 유래한 것이다. 필자는 술을 잘 못 마시기 때문에 술을 먼저 먹으면 항상 괴롭다. 빈속에 들어간 술은 위장을 심하게 흔들어 놓는다. 그렇다 할지라도 접대할 때 식사를 먼저 내놓는 것은 한국의 풍습과는 거리가 멀다. 건강을 위해서 바뀌어야 할 부분이기도 하지만 전통을 고수하는 입장에서 있는 그대로 전해본다. 술을 잘 못 마시는 필자는 열심히 안주를 집어먹는데 남들 보기에 좋을 리가 없다. 요즘은 이런 실수를 하지 않으려고 행사장에 가기 전에 미리 음식을 섭취하고 필요한 경우 약도 미리 먹고 간다. 약을 먹고 마실 바에야 마시지 않는 것이 좋다고 본다. 그나마 요즘은 음주문화가 많이 변해서 운전한다든가, 술을 못 마신다고 하면 강권하지는 않아 다행스럽다. 필자와 같은 실수를 하지 않으려면 술이 약한 사람은 미리 배를 채우고 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

흔히 쉽게 마시고 쉽게 취하면 그만인데 어려운 주도를 말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공자는 예를 알면 두려울 것이 없다고 했다. 회사에 처음 입사하여 윗사람과 술을 마시게 될 때, 상사들과 회식을 하게 될 때 주도를 생각하고 실천하면 그리 해 될 것은 없다고 본다. 입사 후 첫모임에서 예를 아는 사람이라고 칭찬을 들으면 첫인상이 좋게 보일 것은 당연하다.

상고시대부터 우리 민족은 술을 가까이 하면서 살아왔기 때문에 술과의 고리를 끊고 살기는 어렵다. 어차피 가까이 앉고 살아가야 할 운명이라면 서로 문화를 인정하고 예를 갖춰주면 더욱 멋스러운 자리가 되자 않을까 한다. 예는 어려운 것이 아니다. 지키면 편하고 아름다운 것이다. 오늘을 사는 우리 젊은이들이 우리의 전통적인 음주문화를 제대로 지켜 아름답게 생활했으면 한다. 전통은 하루아침에 바뀌는 것이 아니다. 현실에 맞게 서서히 우리의 것으로 만들어 나갔으면 한다.

약력

▷민주평통자문위원
▷국제한국어교육학회 이사
▷한국어문학회 회장
▷저서
<영문노자도덕경>
<현대시와 한시>
<한민족문화론>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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